"한강, 한국문학의 새역사
그녀의 작품속 공감과 연민
한국현실의 극명한 묘사는
불의·폭력 성찰하는 계기로
세계문학주류 물꼬 틔우길"
시인 |
#노벨문학상
지난달,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한국 국민은 물론 우리 문단은 깜짝 놀랐다. 우리 문학의 정체성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한국문학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 '한국문학이 세계 문학에 우뚝 서는 순간'이기도 했다. 달이 지나도 그 놀라움의 감정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한강은 갑자기 부각됐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문학상 수상 발표 직후부터 방송 매체는 일제히 이 소식을 특집으로 다루었는데, 대부분 수상 소식이 뜻밖이란 반응이었다. 그녀의 문학상 수상이 이렇게 빨리 닥쳐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문단에서 담화가 있을 때마다 "노벨문학상을 우리가 탄다면, 아마도 여성 작가들이 먼저 탈 것"이란 예견과 함께 한강이 거론됐을 정도였다. 대개 올해보다는 몇 년이 지나서 돌아올 것이라 여기는 듯했다. 이미 예상의 앞자리를 차지한 세계의 여러 뛰어난 작가들을 거론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수상이 갑자기 실현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계간지 겨울호부터 국내 문학 잡지들은 한강의 수상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그녀의 작품들을 이해하면서 우리 문학의 새 자리를 살피는 특집들을 다투어 마련할 것이다. 국가적으로든 문단적으로든 '한국문학사 최대 경사'를 두고 여러 기념할 만한 일들이 구상되고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강은 정작 조용하게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게 놀랍다고 해야 한다. 수상 소식 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저녁을 가족과 먹으며 충분히 자축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밖으로 자신의 말이 새어나가는 걸 극도로 조심하는 듯했다. 어쩌면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엄청난 축복이어서 도리어 개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독배'를 받은 것일 수도 있다고 여겨서 조심하는 것일까? 세계 문학의 정점에 이르자 갑자기 세간의 관심이 커지면서, 그녀의 모든 삶이 뒤적여지고, 온갖 말들이 창궐하는 걸 본다. 이를 의식하면서 그녀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생에서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작용과 반작용에 대한 대응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오직 작품으로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임을 강조하는 겸손으로 나타난 것일까?
#공감과 연민
한강의 소설을 관통하는 정서는 공감과 연민이다. 가장 한강답다는 소설 '흰'은 시 또는 산문을 통한 짧은 메모들의 서사 형식이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흰'을 그녀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베어 있는" 색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소설 '흰'은 '작고 연약한 것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이며, 그 애도를 통해 '살아있다는 부채감'을 절실하게 드러낸다.
그 점은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년이 온다'에서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 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면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으로 묘사된다. 엄청난 죽음의 고통을 되씹으면서 갖는, 살아있어서 느끼는 부채 의식과 죄의식이 묻어나는 글이다.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치욕적인 경험인 학살이 있은 다음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길고 오랜 싸움이자 몸부림의 기록이다. 제주 4·3에서 희생된 남편을 찾아다니는 인선의 어머니는 제주를 다 뒤지고, 나중에는 대구형무소에서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민간인 대량 학살이 자행됐던 경산 코발트 광산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을 가까스로, 안간힘으로 넘기는 가운데, 새로운 폭력에 시달리는 공포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보여준다. 그것은 결코 '작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떠받치는 정서는 공감과 연민이다. 그러한 삶을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써 연민의 연대를 이루면서 그 고통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야말로 눈송이처럼 가볍고 여린 존재이긴 하지만, 그것들이 모여 강력한 눈보라를 이루듯이 공감과 연민의 힘은 마침내 고통을 이겨내고, 보다 보편적인 세계를 획득하는 것이다.
집요한 주제 의식과 완벽에 가까운 구성, 시적이면서도 치밀한 세부 묘사를 통해 그녀는 제주와 광주, 대구가 겪었던 지역적인 경험들을 극적으로 보여주면서 그것을 보편성의 정서로 세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노벨문학상 선정위는 수상 이유를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범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각각의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고 밝힌 것이리라.
#세계화의 물꼬
다시 말해서 한강 문학은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지역적인 것을 다루면서 그 정서를 보편성의 세계로 고양하여 세계 문학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 점은 세계가 먼저 이해하고 수용하는 듯하다. 우리 서점가의 한강 열풍에 못잖게 해외 서점가는 한강 강풍이 분다고 할 정도다. 프랑스의 출판사에서는 "책이 없어 팔지 못할 정도"라고 말한다. 일본에서도 한강 붐이 거세, 그녀의 작품들의 일본어 번역본이 이내 동이 나서 출판을 서두를 정도다. 수상 발표 직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국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 대한 관심이 종전에 비해 아주 뜨거웠다고 한다.
그동안 아시아 문학이 유럽보다 떨어진다는 관념을 그녀의 수상으로 부수어버렸다. 한편 그녀의 작품에서 보이는 공감과 연민으로 아로새기는 한국 현실의 극명한 묘사는 우리 사회의 불의와 폭력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어쨌든 우리 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하며, 이를 계기로 우리 문학이 세계 문학의 주류로 도도히 흘러가는 물꼬를 틔워야 한다. 그것은 작가들의 열정과 자신감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창작과 문화영역에 대한 제도 점검과 더불어 문화 산업의 성장을 위한 변화와 방향 논의가 국가적으로 이루어져야 가능함은 두말할 게 없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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