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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뭐? 첫사랑이 결혼한다고?

2024-11-07

첫사랑의 결혼 소식에
마지막 인사를 앞두고
서툴렀던 나의 감정들
첫사랑의 축복과 응원
그녀와의 만남, 종지부

[더 나은 세상] 뭐? 첫사랑이 결혼한다고?
우광훈 소설가

내 첫사랑의 결혼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함박눈이 펑펑 퍼붓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정말 뜻하지 않게 날아든 비보였다. 물론 그 사건으로 인해 생겨난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이란 참으로 공평한 것이어서, 그 해 겨울은 꽝꽝 언 나의 가슴속에 조그마한 온기를 함께 불어넣어 주었다. '신춘문예 소설 당선.' 난 이내 미지근해졌다. 역시, 세상은 그런대로 살아볼 만한 곳이었다.

결혼식이 있기 며칠 전, 교보문고 앞에서 대학동기인 희은이와 함께 첫사랑을 만났다. 동성로에서 그녀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한 친구의 개구진 장난으로 인해 삼덕성당 맞은편에 있는 한 재즈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시종일관 침묵했다. 그럼 오늘은? 또 침묵과 불편을 강요당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그녀 앞에만 서면 한 줄의 문장도, 아니, 한 음절의 단어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얼굴만 봐도 쉴 새 없이 요동치는 가슴, 긴 한 숨을 내뱉어야만 일정하게 유지되는 호흡. 그것은 분명 간단한 약물로는 치료할 수 없는 깊디깊은 병임에 틀림없었다. 중환자인 나는 그녀에 비해 많은 것이 부족했다. 그로 인한 열등감, 그것이 내 침묵의 원인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극복이야말로 내가 이뤄내야 할 자기구원의 가장 큰 디딤돌이라고 단정 짓고 말았다.

약속시간 5분 전, 주차장 입구 쪽에서 걸어나오는 그녀의 조그마한 얼굴을 발견했다. 순간, 그녀의 결혼식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아릿했다. 나와 마주한 첫사랑은 엷은 미소를 머금으며 "당선을 축하해"라고 말했다.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야. 언젠가 좋은 글을 쓸 거야. 너도 지켜봐 줘…'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너도 축하해"란 말밖엔 내뱉을 수 없었다. 표현 부족이 아니었다.

희은이가 도착하고, 우린 습관처럼 '티클래스'란 오래된 카페로 갔다. 차가운 커피를 마시고, 일상에 관한 수다가 길게 이어지자 난 다시 예전처럼 건조해졌다. 아니, '첫사랑이 한 낯선 남자의 아내가 된다.'라는 문장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는 듯한 기쁨에 젖어 들고 있었다. 대화가 시들시들해질 때쯤, 우린 카페에서 나와 영화관으로 갔다. 아마, 롯데시네마였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나는 우연히도 첫사랑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녀의 숨결을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무척 불편하게 했다. 나의 팔꿈치가 간간이 그녀의 옷자락을 스칠 때마다 나는 가벼운 흥분과 함께 '아,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하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쯤, "광훈아, 글은 계속 쓸 거니?"라고 첫사랑이 물었다. 나는 정말 그녀가 그렇게 물어봐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시킨 채, "아, 아니. 글 따윈… 그, 그래, 나에겐 그저 치, 취미일 따름이야" 라고 답했다. 조금은 건방지게 말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럼으로써 그녀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감정이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고 자위했다. 정말, 그녀에 대한 열등감이 나로 하여금 희망이 될 만한 것에 더욱더 몰두케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중 하나가 소설이었는지도. 그렇게 시시한 영화는 끝이 났다. 이렇게 내 첫사랑과의 만남도 끝이다. 'The End'란 스크린의 희미한 자막과 함께.

딱, 끝이다.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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