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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복합 불평등 시대

2024-11-28

디지털·영어·건강·연금 격차
자산·기회도 상위 소수 경도
'개천용지수' 부모 소득·학력
자녀 계층 이동과 성공 좌우
尹, 양극화 해소 카드 꺼내

[박규완 칼럼] 복합 불평등 시대
박규완 논설위원

우리는 함무라비 법전을 세계 최초의 성문법으로 기억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간명하고도 강렬한 이 문구는 함무라비 법전의 메타포다. 일견 평등해 보이는 함무라비 법전에도 '불평등'이 녹아 있다. 4천년 전 법전을 초안한 고대 바빌로니아 왕 함무라비는 신분의 경계를 아우르진 못했다. 예컨대 노예가 노예를 살해하면 사형을 당했으되 귀족이 노예를 죽이면 주인에게 노예를 사주면 그만이었다. 유전무죄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불문율이었나 보다.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1만2천800~1만4천500년 전 수렵시대에 이미 불평등이 뿌리내렸다고 주장한다. 증거는 캐나다에서 발견된 고대 원주민 집터. 가장 큰 집의 생선뼈는 75%가 4~5년산으로 크고 종류도 다양한 데 비해 가장 작은 집은 조그만 연어가 100%였다고 한다.

과거 불평등이 신분과 계급 위주였다면 현대엔 불평등의 진폭이 훨씬 방대해졌다. 건강부터 의료, 수명, 학력, 교육, 소득, 자산, 지역, 영어, 연금, 디지털, 재난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이들 불평등을 묘사하는 디바이드(divide)란 낱말은 또 얼마나 차별적이고 격리적인가. 잉글리시 디바이드, 디지털 디바이드, 주거지 디바이드…. 생성형 AI(인공지능)가 보편화하면 디지털 격차는 어느 만큼 벌어질지 가늠조차 어렵다.

영화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의 주거지를 대비해 재난 불평등의 날것을 보여준다. 폭우에 침수되는 반지하와 전망 좋은 저택의 '재난지수'는 극과 극일 수밖에 없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의 말대로 "재난은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자산 불평등은 또 어떤가.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상위 20%의 순자산이 하위 20%의 167배라고 한다. 2017년 100배에서 더 심화되는 추세다. 연금 불평등도 심각하다. 65세 이상의 월평균 연금 수급액이 국민연금 41만원, 직역연금(공무원·군인·사학) 252만원이다.

주병기 서울대 교수는 2019년 부모의 학력·소득과 자녀 성공(성적·소득)의 상관관계를 측정한 '개천용지수'를 발표했다. 역시나 부모의 소득과 학력이 낮을수록 자녀의 계층 이동과 성공 확률이 떨어졌다. 지난 7월의 한국은행 보고서 내용도 맥락이 같다. 부모 경제력이 자녀의 상위권 대학 진학에 미치는 효과가 75%에 달했고, 서울과 비서울 지역의 서울대 진학률을 비교할 때 92%는 거주지역 효과였다고 한다. 소득 불평등, 지역 격차, 기회불공정이 뭉뚱그려 얽혀진 결과다.

흔히 조선시대는 양반이 세습적 특권을 누린 폐쇄적 사회로 알고 있지만 기실은 신분 이동이 역동적이었다. 과거(科擧)가 사다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태조부터 선조 때까지 문과 급제자 4천527명 중 1천100명이 양인 출신이었고, 그중 307명은 3품 이상의 고위 관직에 올랐다. '개룡남(개천에서 용 된 남자)'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오히려 오늘날엔 '개룡남'이 '금수저'에 압도당하는 형국 아닌가.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는 "극단적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복합 불평등 시대의 자조(自嘲)처럼 들린다. 지금, 불평등을 완화할 담론이 필요한 때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 카드를 꺼냈다. 기회불공정 해소와 수도권 일극주의 척결, 사회안전망 강화는 기본이다. 손실보상제, 이익공유제, 기본소득 논의도 배제할 이유가 없다. 안전, 소득, 자산, 기회 등등이 상위 소수에 경도되는 사회는 그다지 이상적이지 않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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