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애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
11월 국회는 예산국회다. 정부 예산안은 매년 9월 초에 국회에 제출되지만 10월 국정감사를 끝내고 나면 예산안에 대한 심사는 11월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법정처리 시한인 12월2일을 넘기기가 일쑤다. 실제로 예산안이 법정처리 시한을 지킨 건 2014년과 2020년 두 번뿐이다.
그런데 예산안의 늑장처리를 막겠다는 취지로 2014년 국회법을 고쳐 정부 예산안의 자동부의제를 도입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예산안 자동부의제'가 법으로 통과되었다는 점이다. 국회가 자신이 가진 고유의 기능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꼴이다.
헌법상 예산편성권은 정부가 가지고 있고 정부의 동의 없이는 단 한 건의 증액도 불가능하다. 예산안에 있어서 만큼은 국회가 절대 약자다. 그런데 자동부의제라니… 자동부의제가 도입되면서 예산심사와 통과에 있어서 국회의 심의·의결권은 무력화되었다. 국회의 가장 큰 기능이 입법과 감사, 예산심의·의결권인데 그중 하나를 그냥 손 놔 버린 거다. 아뿔싸… 실제로 국회는 기획재정부의 동의 없이 단 한 건의 증액 사업도 통과시킬 수 없다. 감액만이 가능한데 그마저도 자동부의제로 국회 심의·의결권이 무력화되는 법안을 국회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국회가 스스로 자기 발에 족쇄를 채우는 일이 이 한 가지뿐일까. 아마 당시에는 고질적인 예산 파행을 막아보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산심사의 파행이라는 것도 국회 본연의 역할 속에 벌어진 일이라면 스스로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집행부의 기능을 강화해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던 것이 자승자박의 결과로 돌아왔다. 마치 슈퍼맨이 자신의 망토가 펄럭이는 게 불편해 망토를 벗어 다른 이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날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과 뭐가 다를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국회가 자신의 권한을 집행부에 넘긴 것처럼 역시나 스스로의 역할을 포기하고 사법부에 자신의 기능을 넘긴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게 정치의 사법화이다. 법은 과거와 현실을 다루며 상상력이 전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영역이다. 반면 정치는 현재와 미래를 다루며 무한한 상상력이 발동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갈등이 증폭될 때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 본연의 역할이다.
그런데 정치가 상상력과 갈등 조정의 기능을 법원으로 보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다수의 정치인들이 법정에서 무수한 시간을 보내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 대장동이나 백현동 사건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연루된 다수의 사건들이 연일 언론에 보도된다. 그중 상당수는 정치 영역에 사법 논리가 과도하게 개입하게 된 사례다. 국회는 민심을 대변해 법을 만들고, 집행부는 그 법에 기반해 일을 하며, 사법부는 그 법을 적용해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이렇듯 민주주의에서 입법-행정-사법이 균형을 유지하며 제 역할을 해나갈 때 사회는 안정적으로 굴러간다. 제 역할이 무엇인지 명심하고 잘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가 자신의 위상을 스스로 갉아먹는 일은 더 이상 없길 바란다.임미애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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