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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칼럼] 정치, 그 엄혹함에 관하여

2024-12-10

[3040칼럼] 정치, 그 엄혹함에 관하여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천민도 학문을 배워 벼슬을 하는 세상인데 계집이라 하여 어찌 쓰일 곳이 없겠습니까?" "쓰이지 마라. 아무 곳에도 쓰이지 말라 이르는 것이다." "조선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틀렸다. 조선은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집안에서 조선의 운명 걱정은 니 애비와 큰애비로 충분하다. 단정히 있다가 혼인하여 지애비 그늘에서 꽃처럼 살란 말이다. 나비나 수놓으며 살아. 화초나 수놓으며 살아."

구한말을 시대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애신(김태리 분)과 그의 조부 고사홍(이호재 분)이 나누는 대화의 한 장면이다.

'정치적 발언을 삼갈 것, 정치에 관심 갖지 말 것.' TK지역 3040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조언일 것이다. 정치 양극화로 분노와 증오가 팽배해진 사회 분위기에서 자신의 자녀나 후배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와 선배의 마음에서 나온 충고가 아닐까 싶다. 필자 또한 뉴스가 시작되면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버리곤 한다. 뉴스 대신 '지옥에서 온 판사'가 악인을 단죄하고 '열혈 사제'가 출중한 무술 실력으로 악인을 때려눕히는 드라마를 시청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작금의 사태를 접하면서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했던 스스로를 반성한다.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직업 정치인이 정치의 주체자이지만 그 뿌리는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 특히 현재 위기 상황에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의식을 갖고 뜻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테네에서 철학자로 머물렀다면 명예로운 노후가 보장되었을 플라톤 또한 이탈리아 시라쿠사의 현실 정치에 온몸을 던졌다.

우리는 유튜브 쇼츠나 읽기 편리한 인터넷 기사 댓글로 손쉽게 정보를 받아들이기보다 가공되지 않은 사실의 전체 맥락을 파악함으로써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정치인은 국민과의 스킨십 면적을 넓혀야 한다. 강의의 형태로든 SNS 계정 운영을 통해서든 국민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했다면 국민들도 여의도 상황이 피부에 조금 더 와닿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지면의 활자나 가공된 미디어 영상을 통해서만 국정을 접했던 때문인지 입법권 장악, 예산안 강행 처리와 같은 단어가 생소하고 상상으로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정치인의 몫이지만 이는 개인의 자리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외면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다. 그때 '정의에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다.' '파도가 밀려나면 누가 바지 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빈 종이에 연필로 꼭꼭 눌러 쓰며 현실 도피를 현실 극복의 경험으로 바꿔보자고 혼자 수없이 되뇐다.

"꽃처럼 사느니 죽겠습니다." 극 중 고애신은 결연한 의지를 보인다. 드라마가 아닌 실제로는 조부의 뜻에 따라 꽃과 나비를 수놓으며 살게 되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깝다. 대쪽 같은 나무는 바람 불면 꺾이지만 풀은 바람결 따라 누워 살아남으므로 권력의 바람이 불 때 알아서 누울 것. 판도라의 상자에서 가장 큰 저주는 희망이므로 희망을 갖지 말고 무기력하게 있을 것. 이쪽이 현실에 더 가깝다.

기적은 죽은 나무에 핀 꽃이 아니라 절망적일 때도 정원에 매일 준 '물'이라고 한다. 국정이 회복되기를, 그리하여 이 혼란이 수습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꽃과 나비를 한 땀 한 땀 수놓아 본다.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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