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성 동부지역본부장 |
느닷없는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그에 따른 탄핵,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으로 혼란에 빠졌던 2024년이 저물고 을사(乙巳)년 새 아침이 밝았다. 정치·사회·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아직 불안정한 가운데 올 한 해는 무엇보다 국내 경기회복 여부가 관심사다. 특히 경북 최대 도시 포항은 더욱 그렇다. IMF급 경제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지역 대기업의 일부 생산라인이 멈춘 데다, 포항의 투트랙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던 2차전지 산업마저 활기를 잃은 지 이미 오래됐다. 사실, 포항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도 상대적으로 타격을 입지 않았다. 철강 중심의 경제 기반이 워낙 견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결이 다르다. 지역산업의 주춧돌격인 철강산업이 국내외 직격탄을 맞으면서 시중에서는 '이번이 진짜 IMF'라는 우려가 심심찮게 들린다.
포스코는 지난해 포항제철소 1제강공장과 1선재공장을 폐쇄했고, 현대제철 역시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 포항2공장 폐쇄를 추진 중이다. 이번 철강 공장 폐쇄로 인한 어두운 그림자가 유난히 짙어 보이는 것은 단순히 경기 침체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태의 본질은 중국발 '치킨게임'이라는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됐다. 세계 철강 생산량의 절반 이상(55%)을 차지하는 중국은 건설 경기 악화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고물량을 세계 각지로 덤핑판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철강 시장은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가격 폭락의 늪에 빠졌고 침체의 끝을 가늠하기도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2차전지 산업도 글로벌 수요 둔화, 이른바 '캐즘(chasm)'에 빠지며 적신호가 켜졌다. 포스코퓨처엠 등 관련 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보류하거나 철회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질 만큼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마저 9.3% 인상된 데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철강과 2차전지 산업에는 또다른 경고음이 강하게 울리고 있다. 그는 첫 임기 때 철강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를 부과했고,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을 대폭 축소하겠다고 공언했었다. 포항에 대형 악재가 될 가능성이 커진 이유다. 더 큰 문제는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상계엄 선포에 이은 탄핵정국으로 국가 전체가 소용돌이에 휘말린 상황이기에 포항의 위기도 장기간 지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다. 이강덕 포항시장이 최근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특별지역으로 지정되면 사업재편·지역특화발전, 금융·세제, 고용 안정 등의 부분에 정부 지원이 이뤄진다. 2018년 한국GM 공장이 폐쇄된 군산을 비롯, 조선업 경기 침체로 불황을 맞은 울산 동구와 거제, 창원 진해구, 통영시·고성군 등이 지정돼 정부 지원을 받은 전례가 있다.
이는 단기적 위기 극복은 물론, 산업 다각화와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장기적인 기반을 다지는 데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포항은 과거 '영일만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룬 역사와 잠재력을 가진 도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길은 결코 쉽지 않지만 정부, 기업, 지역 사회가 힘을 모아 공동 대응한다면 불가능하지도 않다. 정부는 '철강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포스코가 무너지면 포항이 넘어진다'는 경제인들의 우려와 걱정을 새겨들어야 한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장
마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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