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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경북 칠곡 각산마을, "새해 소원 빌어볼까"…수령 1천년 '말하는 은행나무' 신비

2025-01-17

키 30m 은행나무 칠곡군 보호수 지정
마을사람 고민 조언·해결 전설 전해져
서당 두개 간직한 각산1리 '선비마을'
독립운동 장석영·유학자 장복추 유명

[주말&여행] 경북 칠곡 각산마을, 새해 소원 빌어볼까…수령 1천년 말하는 은행나무 신비
각산리 말하는 은행나무. 키는 30m, 둘레 7m의 아름드리다. 나만의 고민을 알아봐주고 어떤 방법으로든 답을 말해준다 하여 '말하는 은행나무'라 불리게 되었다.

각산리라 한자로 새겨진 어두컴컴한 표지석을 휘 지나친다. 마을 쪽으로 뻗어나간 도로변에 고요히 자리하던 각산1리 마을회관과 그 너머에 훌쩍 솟구쳐 있던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는 미리 마음에 담아 둔다. 길과 나란한 도랑에서 하늘하늘 고개 내민 풀들과 도랑에 놓인 간결한 다리를 대문삼은 몇 채의 집을 지나면 각산리 쉼터가 있는 갈림길. 여기서 대흥사와 '말하는 은행나무' 이정표를 따라 조금씩 상승하는 왼쪽 길로 들어선다.

[주말&여행] 경북 칠곡 각산마을, 새해 소원 빌어볼까…수령 1천년 말하는 은행나무 신비
마을회관 옆 우람한 소나무 아래에 '의병옥산장공유허비'와 '사미헌장선생유적비'가 나란하다. 단을 높이고 잘 정돈된 수목으로 영역을 갖춰 후손들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 퉁지미 마을의 새색시 이야기

수량이 낮은지 물이 뵈지 않는 각산저수지를 지난다. 새마을 운동 때 만들었다는 저수지다. 곧 서치지가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었다는 서치지는 햇살 좋은 물가에 온화한 산책로를 가진 작은 저수지다. 두 저수지의 사잇길 들어가면 예닐곱 예쁘장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조그만 마을이 나타난다. 각산1리의 자연마을인 '퉁지미'다. 옛날에는 질이 나쁜 놋쇠를 퉁이라 했는데, 대흥사가 번창할 때 절에 필요한 놋그릇을 굽던 동점(銅店), 또는 퉁점이 있었다하여 퉁지미라 불렀다 한다. 이 마을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옛날에 성주에서 퉁지미 마을로 시집온 새색시가 있었다. 3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새색시는 답답하고 울적할 때마다 뒷산 어귀의 큰 은행나무를 찾아가 떨어진 잎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은행나무가 나타났다. 은행나무는 곧 어머니로 변하더니 따스한 손길로 은행나무 두 잎을 딸에게 쥐어주었다. 하나는 갈라진 것, 다른 하나는 갈라지지 않은 은행잎이었다. 그리고는 '보름달이 뜨는 날 은행나무로 가서 떨어지는 잎을 잡으라'고 말하고는 은행나무로 변해버렸다. 새색시는 꿈속에서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은행나무 아래에서 떨어지는 잎을 잡았다. 잎이 갈라져 있었다고 한다. 이후 새색시는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고 전한다. 마을 끝에서 좁은 임도가 시작된다. 길 옆 좁은 계곡에 흰 빛이 번쩍인다. 얼어버린 계류가 거꾸로 자라난 고드름모양이라 세상 신기하다.

[주말&여행] 경북 칠곡 각산마을, 새해 소원 빌어볼까…수령 1천년 말하는 은행나무 신비
회당 장석영이 지은 녹동서당 앞 은행나무가 기장 관미헌 정원에 있는 은행나무의 모수라고 한다.
[주말&여행] 경북 칠곡 각산마을, 새해 소원 빌어볼까…수령 1천년 말하는 은행나무 신비
은행나무 뒤편의 납작한 암자가 대흥사다. 사하에 동점을 둘 만큼 대가람이었지만 현재는 스님 한 분의 거처라고 한다.

◆ 말하는 은행나무

새색시는 아들을 낳고 잘 살았을 게다. 이후 어떻게 됐냐면,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은행나무를 찾아가 이런저런 남모를 고민을 털어놓았단다. 그럴 때마다 은행나무는 꿈속에 가장 사랑하는 가족으로 나타나 위로해주고 조언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차츰 나만의 고민을 알아봐주고 어떤 방법으로든 답을 말해준다 하여 '말하는 은행나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하늘이 뻥 뚫린다. 난무하는 귀기에 흠칫한다. 순간 서늘한 바람이 골짜기를 강하게 스쳤지만 숲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떤 향기나 냄새도, 어떤 소리나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가지마다 산신령이 걸터앉아 나를 보는 것 같다. 영매 같다. 아니 아예 영(靈)이다. 저 나무가 '말하는 은행나무'다. 말뿐만 아니라 긴 가지를 뻗어 나를 꽉 움켜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컹, 개가 짖는다. 구원받은 느낌이다.

은행나무의 키는 30m다. 아파트 10층 높이보다 높다. 가슴높이 둘레는 7m로 장정 6명 정도가 안아야 될 만한 아름드리다. 곧게 선 줄기는 밑동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뒤틀리면서 균형 있게 곧추 자라 지상 8m 정도 높이에서 여러 개의 가지로 나뉘면서 사방으로 고르게 뻗어 있다. 보다 낮은 높이의 두 가지는 땅으로 굽어 지팡이를 짚었다. 이 은행나무는 1993년 8월에 칠곡군의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당시 수령을 950년 정도로 봤는데, 일설에는 '칠곡'이라는 지명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고려 현종 8년인 1018년 전후에 심어졌다고 한다. 그러면 천년이 넘는다. 천년. 은행나무 뒤편의 납작한 암자가 대흥사다. 사하에 동점을 둘 만큼 대가람이었지만 현재는 스님 한 분의 거처라고 한다. 스님의 기척이 느껴지고, 개는 더 이상 짖지 않는다. 은행나무의 거친 수피에 손을 대어 본다. 군데군데 이끼에 덮여 있지만 나무의 피부는 생각보다 건조하다. 주변은 온통 지난해의 잎들이다. 채도를 잃은 은행잎들이 접히다 만 부채처럼 움츠린 모양새로 겹겹이 수북하다. 사람들이 남긴 돌탑을 본다. 누군가는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았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꿈에 사랑하는 가족을 만났을 것이다.

[주말&여행] 경북 칠곡 각산마을, 새해 소원 빌어볼까…수령 1천년 말하는 은행나무 신비
회당 장석영이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지은 녹동서당. 왼쪽 뒤편의 기와지붕이 사미헌의 녹리서당과 녹리고택이다.

◆ 각산마을

각산1리는 인동장씨 집성촌으로 선비마을이라 불린다. 한때 온 동네가 글 읽는 소리로 가득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마을에는 녹리, 녹동 두 개의 서당이 남아있다. 녹리서당은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가 1890년에 지은 것이다. 그는 조선후기 영남 유림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여헌 장현광의 8세손이다. 녹동서당은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이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지었다. 그는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청하는 '청참오적소'를 올렸고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 지방보상회장으로 활약했다. 3·1운동 때는 파리장서 초안을 작성했고 이후 성주장터 만세시위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마을회관 옆 우람한 소나무 아래에 두 분을 기리는 비석이 모셔져 있다. 단을 높이고 잘 정돈된 수목으로 영역을 갖춰 후손들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을 안길이 아주 넉넉하다. 멀리 가장 안쪽에 자리한 기와지붕이 녹리서당과 사미헌의 고택이고 가장 먼저 정면으로 보이는 기와지붕이 녹동서당이다. 녹동서당 담벼락에 키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날씬해 보이지만 까치집을 두 채나 품은 넉넉한 암나무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에는 남평문씨 일족이 4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가꾸어 온 '아홉산 숲'이 있다. 입구에 숲을 관리하는 집안의 종택인 관미헌이 있는데 그 정원에 아주 잘생긴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 나무를 심은 이는 기장향교 전교를 지낸 문의순(文義淳)이다. 그는 1924년에 결혼했는데 처가가 이곳 각산리로 부인은 사미헌의 종증손녀였다. 문의순은 처가에 신행을 다녀오면서 은행열매를 얻어와 관미헌 정원에 심었는데 그 은행열매의 모수가 녹동서당 은행나무라고 한다. 문의순의 아내는 그 정원의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고향과 어머니를 떠올렸을게다. 로맨틱해라,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사랑하는 아내 아미티스를 위해 만든 공중정원처럼.

서당 옆 2층집 테라스에서 개들이 짖는다. 끊임없이 짖어댄다. 그 곁에 한 남자의 실루엣이 우두커니 서 있다. 멀리서 한 여인이 걸어온다. 시선이 확인되지 않는 거리지만 당연한 듯 서로 목례를 나눈다. 이윽고 마주한 그녀는 부드럽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만 보이면 짖어요." 심심해서라고 했는지 사람이 그리워서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심해서라는 말을 사람이 그리워서라고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경계심이 많아서라든가 성격이 사나워서가 아니라 심심해서 혹은 그리워서라니. 놀라 두근거리던 마음이 따뜻해진다. 뭔가에 조금 홀린 듯 나른한 오후였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대전방향 왜관IC에서 내린다. 오른쪽 왜관방향으로 나가 직진, 매원사거리에서 좌회전해 계속 직진한다. 제2왜관교를 건너자마자 죽전교차로에서 오른쪽 기산면 방향으로 빠져나가 왼쪽의 굴다리 2개를 차례로 통과해 좌회전, 회전교차로에서 4시 방향으로 나가 약 150m 직진한 후 경북과학대학교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간다. 경북과학대학교 지나 계속 직진하면 각산리 마을 표지석과 '말하는 은행나무' 이정표를 볼 수 있다. 각산저수지와 서치지 사이 각산3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마을 끝자락에서 임도가 시작되는데 교행이 어려운 좁은 길이지만 평일이나 한산한 계절이면 은행나무 앞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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