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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바그너를 좋아하세요

2025-01-21

[문화산책] 바그너를 좋아하세요
곽보라 (아트메이트 대표)

현대인은 끊임없는 자극 속에서 살아간다. 빠르게 재생되는 디지털 플랫폼의 릴스와 숏폼(짧은 영상) 콘텐츠는 한 가지에 깊이 몰두하는 시간을 점점 빼앗아 간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우리의 주의를 쪼개는 산만함의 시대, 즉 몰입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우리는 한 장면이나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워졌고, 공연장조차 이러한 유행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관객들은 공연을 즐기기보다는 공연을 찍고 기록하며, 이를 즉각적으로 공유하려는 욕구에 더 많이 반응한다. 몰입이 상실된 예술적 경험은 관객과 공연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공감과 연결의 순간을 희미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대에 리하르트 바그너(R.Wagner)의 음악은 역설적일 만큼 대조적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듣고 즐기는 음악이 아니라, 청중에게 몰입을 요구하는 도전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그너를 처음 만난 날을 잊지 못한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감상한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막이 열리는 순간부터 끊어질 듯 말 듯 실낱같이 이어지는 서곡의 선율은 심장박동기의 마지막 소리처럼 강렬했다. 공허한 공간에 삐- 하고 울리는 기계의 소리, 내 심장은 그 순간 멈춘 것이 분명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고, 입으로는 탄성이 뱉어졌다. 오, 신이시여.

바그너의 작품은 그 자체로 거대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관객은 단순히 몇 분 동안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방대한 서사 속으로 초대된다. 전통적인 오페라에서 막(Act)과 장(Scene)마다 음악의 시작과 끝을 나누어 쉬는 틈을 주었다면, 바그너의 음악은 막이 열린 순간부터 닫힐 때까지 무한선율(Unendliche Melodie)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관객을 그 흐름 안에 가둬버린다. 음악이 멈추는 순간이 없으니, 관객은 자연스럽게 음악과 서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방식은 단순히 새로운 음악 기법의 제안일 뿐 아니라, 관객이 예술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재정의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현대인에게 어쩌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바그너 음악의 예술적 경험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바그너의 음악 속에서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잃어버린 감각, 즉 '시간을 두고 하나의 경험에 완전히 빠져드는 능력'을 되찾을 수 있다. 오늘날 예술 감상에 있어 몰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너무 많은 것을 빠르게 소비하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는 우리에게, 바그너의 음악은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습니까?"

곽보라〈아트메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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