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는 단순한 참고일 뿐
개인들이 가진 발전 가능성
T나 F로 담아내기 어려워
성격 규정짓는 장벽이 아닌
타인 이해하는 출발점 되길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
"너 T야?"
나는 진심 어린 위로를 바랐는데 친구의 분석적인 설명들이 서늘한 한숨을 자아내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MZ세대는 이런 '공감 제로'의 상황을 두고 'T스럽다'고 말한다. MBTI의 'Thinking' 유형을 재치 있게 차용한 이 신조어는, 그들 사이에서 MBTI가 얼마나 일상적인 소통 코드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다.
2020년을 기점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은 MBTI는 이제 단순한 성격 검사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 에너지 방향(E/I), 인식 방식(S/N), 판단 기준(T/F), 생활 양식(J/P)이라는 4가지 지표로 개인의 성향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이 도구는, MZ세대에게 있어 필수적인 자기 표현의 언어가 되었다. 첫 만남에서 MBTI를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다. "저는 ENFP예요"라는 한마디로 자신의 성향을 설명할 수 있고, 상대방의 MBTI를 통해 관계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MBTI의 이름을 빌린 다양한 변형 검사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고, 버크만이나 애니어그램과 같은 다른 검사들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 유형화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모든 성격 검사의 근본적인 약점은 '자기 보고식 평가'라는 방식에 있다. "당신은 계획적인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 답할 때, 우리는 이미 '계획성'에 대한 주관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매주 일정표를 작성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계획적인 행동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기본적인 수준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검사 시점의 상황적 맥락이다. 최근의 실패 경험이 전반적인 답변을 부정적으로 물들일 수 있고, 반대로 성공 경험은 평소보다 더 긍정적인 응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처럼 일시적인 감정 상태나 환경적 요인이 검사 결과를 왜곡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성격 유형이 자기 성장의 한계를 설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난 I유형이라 내향적이고 발표를 못 해"라거나 "F유형이라 논리적 판단이 어려워"라는 식의 자기 합리화는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성격 유형은 현재의 선호도나 경향성을 보여주는 것일 뿐, 우리의 잠재력이나 발전 가능성을 규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 유형 검사가 의미 있는 이유는 자기 성찰과 타인 이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완벽한 도구는 아닐지라도,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에 가치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도구들을 절대적 진리가 아닌, 하나의 참고 지점으로 활용하는 지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성격 유형은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진 개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공용어가 될 수 있다. 'T스럽다'는 표현이 때로는 비판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는 서로 다른 성향을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성격 유형 검사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하나의 렌즈로 활용하되, 그것이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는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T나 F와 같은 한 글자로는 담아낼 수 없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있다. 때론 서툴고, 때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우리 모두가 써내려가는 각자의 이야기가 너무나 독특하고, 다양하며, 또 아름답지 않은가?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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