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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불교·제례에 올리는 향, 정신 맑게 해 신과 통한다 믿어

2025-02-21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불교·제례에 올리는 향, 정신 맑게 해 신과 통한다 믿어
'감모여재도', 108.3×72.0㎝, 종이에 채색, 조선시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날개를 펼친 봉황이 비상한다. 가슴에는 두 줄기의 연기가 춤을 추며 회오리를 일으킨다. 수려한 용 받침대 위로 연화장세계가 꽃처럼 피었다.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의 모습이다. 향로 몸체에는 3단의 연꽃잎 위에 물고기와 악어, 물새가 노니는 바다세계가 장관이다. 향로 뚜껑에는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산 능선에 호랑이와 멧돼지, 식물과 인물 등의 조각이 수려하게 새겨졌다. 백제 사람들이 꿈꾼 이상향이 오롯이 나풀거린다. 펄떡이는 맥박을 억누르며 '백제금동대향로' 앞에 섰다. 적멸(寂滅)의 순간이다.

섬세한 조각술 백미 '백제금동대향로'
부처님께 헌향하는 공양구로 사용
사찰서 향은 신심 일으키는 매개체

민화 '감모여재도'에도 향로가 등장
사당 대신 그림 걸어두고 제사 지내
향 피우는 여인의 모습 '매하인물도'
떠난 임 돌아오길 기다리는 간절함

대중의 일상 깊숙이 스며든 향문화
차 마시거나 학문 익힐 때도 향 필수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불교·제례에 올리는 향, 정신 맑게 해 신과 통한다 믿어
'백제금동대향로', 금동, 높이 61.8㎝, 지름 20.0㎝, 백제,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불교·제례에 올리는 향, 정신 맑게 해 신과 통한다 믿어
이하곤, '매하인물도(梅下人物圖)', 비단에 채색, 129.1㎝×48.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 역사를 감싼 향과 '해인사 감로탱'의 향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발굴된 금동으로 만든 대형 향로다. 절에서 부처님께 헌향(獻香)하는 공양구(供養具)로 사용됐다. 개관 30주년을 맞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특별전 '향의 문화사: 염원에서 취향으로'(2024. 12.7~2025. 3. 3)가 열리고 있다. 향의 역사를 톺아보며, 생활문화에 깊숙이 스며든 향의 사용과 향로, 향 도구 등 실용성과 공예미를 심도 있게 차렸다.

향은 불교의례와 제사, 의료용으로 사용된다. 불교와 함께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한국에 전해졌다. 4세기 고구려 고분 벽화 안악3호분 '부인도'에 향로를 든 귀족 여인이 묘사돼 있다. 이 향로는 '백제금동대향로'와 비슷한 모양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아 신라에서도 향을 사용했다. 성덕대왕 신종에는 선인이 향로를 들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고려시대에도 그랬다. 정교하게 제작한 '청동은입사향완'을 사찰의 불단에 놓았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문화권답게 향의 사용이 활성화됐다.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워 조상을 모셨고, 혼례와 생일잔치에 향을 피워 의식을 치렀다. 또 미용과 의료용으로 널리 사용돼 사대부가 즐겨 찾았다. 민간인에게도 보급됐다. 몸을 단장하거나 향을 담은 소품이 유행을 탔다. 방향제나 나쁜 냄새를 제거하는 용도로 쓰였는가 하면, 향수의 역할도 했다.

향은 불교에서 육법공양(六法供養) 중 두 번째로 중요한 공양물이다. 사찰에서 의례에 들기 전 향을 피워 도량을 청정하게 하며, 신심을 일으키게 하는 매개체였다. 향을 피우는 향로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불화에 등장한다. '해인사 감로탱(海印寺 甘露幀)'에는 제상(祭床) 중간에 향로가 놓여 있다. 거대한 크기로 제작된 감로탱은 고혼이 감로(甘露)를 받아서 부처의 세계로 구원되는 여정을 담은 그림이다.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제작돼 현재 66여 점의 작품이 전한다.

1723년에 조성된 '해인사 감로탱'은 삼단형식을 따른 불화이다. 하단에는 사바 세계의 인간 모습이 펼쳐지고, 중단에는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하늘로 곧 승천할 것 같은 공간에 제상이 보인다. 고봉으로 담긴 밥그릇이 두 줄로 놓여 있고 4개의 촛대와 중앙에 향로가 있다. 꽃과 차, 장엄물이 장식돼 불심으로 가득하다. 구제 받을 아귀는 부처를 향해 그릇을 높이 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향이 아귀의 절규처럼 피어오른다. 특별전에는 감로탱에 그려진 해인사 소장 '청동은입사정형향로'(1700년 이전)를 '해인사 감로탱'과 같이 전시하여 관람객의 이해도를 높였다.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불교·제례에 올리는 향, 정신 맑게 해 신과 통한다 믿어
김남희 작가
◆민화 '감모여재도'와 '매하인물도' 속의 향

향은 신과 통하는 매개로 속세와 내세를 구분 짓는 영역으로 사용됐다. 유교사회에서 조상을 모시는 것은 '효(孝)'의 으뜸이었다.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 제사를 올리는 제례의례(祭禮儀禮)가 중요했다. 사당에서 제사를 모실 수 없는 경우,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를 걸어 두고 제사를 지냈다. '감모여재'는 조상이 살아있을 때와 같이 지극정성으로 섬긴다는 의미이다. 민화로 분류되는 '감모여재도'는 사당 건물을 그려 넣어서 '사당도(祠堂圖)'로도 불린다.

'감모여재도'는 기와지붕 아래 위패(位牌)를 모시는 공간을 중앙에 흰색으로 비워두고, 좌우에 분홍색과 흰색의 도자기로 장식했다. 상 위에는 자손의 번창을 의미하는, 씨앗이 많은 과일이 올려져 있고, 향로를 중심으로 두 개의 촛대가 불을 밝힌다. 건물 좌우에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을 화병에 꽂아 두었다. 향 의례는 조상신을 강림하게 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향은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 일반 대중의 삶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좋은 냄새를 풍기는 향을 몸에 지니거나 일상에서 심신을 단련할 때 향을 피웠다. 지극정성으로 소원을 빌 때도 향을 피우고 마음을 단정하게 하였다. 향은 학문을 익히거나 차를 마실 때 필수로 사용됐다. 책꽂이에 희귀한 향로를 수집하여 장식하기도 했다.

널리 애용된 향로는 조선시대 회화 곳곳에 표현돼 있다.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 1677~1724)의 '매하인물도(梅下人物圖)'에는 떠난 임을 기다리며 매일 향을 피우는 의식이 묘사돼 있다. 이하곤은 1만권의 책을 옆에 두고 학문과 서화에 매진한 사대부 화가이다. 사실주의를 주창한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와 시인 사천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과 교유하며 진경시대를 열었다.

'매하인물도'에는 정성껏 키운 소나무 분재와 앙증맞은 화초가 마당 앞에 놓여 시선을 끈다. 탁자 위에는 여인이 애장하는 화병과 진귀한 골동품이 가득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 뒤에 괴석을 세우고 매화나무, 대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을 아름답게 꾸몄다. 매화가 활짝 피어 여인은 마음이 설렌다. 시녀가 새로 향을 피워 향로를 여인에게 들고 온다.

화면에는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 절절하다. "낭군님 헤어질 때 매화 폈는데(昔別阿郎梅發時), 매화가 다시 펴도 돌아올 기약 없네(梅花又發杳歸期). 봄이 오자 뒤숭숭한 이내 마음을(春來無限心中事), 향 피우는 시녀만이 알고 있으리(唯有焚香侍女知)." 여인은 자신의 소망이 깃든 향 연기가 임에게 가 닿기를 기원한다.

향 특별전에서는 귀한 자료도 있었다.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의 서화첩과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李寅文, 1745~1824)의 서화첩이 그것이다. 도판으로 보다가 진품을 직접 보니 가슴이 벅찼다. 한참을 자세히 뚫어져라 감상했다. 이인상의 작품은 문인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가질 때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이인문은 스승이 제자와 정자에 앉아 학문을 익힐 때, 향을 피워 기운을 돋우는 장면을 그렸다.

◆삶을 정화시키는 한 줄기 '영혼의 찬가'

1년 전, '백제금동대향로' 축소 모형을 선물 받았다. 자그마한 향로였지만 압축적으로 편집한 웅대함이 놀라웠다. 장식장 중앙에 놓아두고 틈만 나면 꺼내서 어루만졌다. 실물은 감동이 더했다. 향기로운 장엄함과 백제인의 조각술에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 불심으로 조형한 영혼의 덩어리였다. 향을 피우는 것은 종교를 넘어서 산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엄숙하게 정화하는 일이자 이생과 내생을 향기롭게 잇는 일이다. 향은 여전히 삶의 방향제가 되어 우리 곁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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