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엘리트들의 각자도생
파편화된 지방생존 목소리
중앙 종속화로 직면한 현실
덫에서 빠져나갈 생각 없는
둔감함이나 어리석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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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
이런 종류의 경고는 이미 여러 차례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기에 이젠 놀라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국내 학자들이 경고해도 우리 한국인들은 의연하다. "서울을 생물학 종에 비유한다면 이미 멸종의 길에 들어섰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조영태가 2022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0.78, 그중에서도 서울시가 0.59를 기록한 것을 두고 2023년 3월에 내놓은 경고다.
조영태는 "한국의 출산율이 유독 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엄청난 집중"이라며 "지금 청년들, 아이를 안 낳는 30대 초중반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경쟁이 심한 삶을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 "청년들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이 다 경쟁"이라며 "동년배만이 아니라 윗세대와도 계속해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사는 게 중요한가, 후손을 낳는 게 중요할까를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나도 못 살겠는데 무슨 애를 낳아. 나부터 살아야지"라는 입장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한강의 기적'은 지방 인구의 서울 집중 덕분에 가능했다는 걸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지방소멸이 그간 우리가 누려 온 번영의 토대가 되었기에 지방소멸을 무작정 비난하거나 저주만 퍼부을 건 아니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명암(明暗)이 있는 법이어서 우리의 성공 이유가 이젠 우리의 몰락 이유가 되는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지방 살리기에 모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우리 후손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게 아닌가. 아니 '지방 살리기'라고 하면 일부 서울 시민들이 시큰둥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 이미 멸종의 길에 들어선 서울의 멸종을 막는 '서울 살리기'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즉, 서울과 지방은 분리될 수 없는 공동운명체라는 걸 널리 알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서울멸종과 지방소멸을 뉴스로만 소비할 뿐, 그걸 막으려는 실천이 매우 약하다. 왜 그럴까? 우선 지방소멸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지방 정치엘리트의 문제부터 지적해보자. "생존 중인 역대 도지사 12명 중 1명만 전북에서 살고 있습니다." 2006년 6월30일 밤 전북의 민영방송인 JTV 뉴스 내용이다. TV를 시청하다가 화들짝 놀라 메모해둔 것이다. 11명은 어디에서 살까? 물론 서울이나 서울 근교일 것이다. 전북만 그런 게 아니다. 다소 정도의 차이일 뿐 지방의 모든 지역이 다 그렇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선자 중 비수도권 광역 시·도지사 9명 중 8명이 서울, 나머지 1명은 경기 과천에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을 자가나 전세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3월 기준 전체 국회의원 세 명 중 한 명이 서울 강남 3구에 아파트나 오피스텔, 단독주택 등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에 못지않게 놀라운 건 자신의 지역구 자택은 전세로 얻은 대신 강남 3구에 집을 갖고 있는 의원이 31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2023년 3월 공직자 재산신고 현황에 따르면 전국 광역단체장 17명 중 9명이 배우자와 공동명의 또는 부인 명의로 서울 강남, 경기도 분당·일산신도시 내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경향신문이 지방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 202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66명이 서울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고가 아파트를 소유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중 50명은 자신의 지역구에서는 전·월세 임차로 거주하면서 서울에 집을 가졌다. 2025년 3월의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지방 정치엘리트가 서울에 집을 갖고 있는 걸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지방소멸을 주요 정치적 의제로 만들 수 있는 동력이 나오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지방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사 놓고 서울서 주말을 보내거나 자녀의 서울 유학용으로 활용한다. 이 또한 비판의 대상은 아니지만, 지방에서 목소리를 내줘야 할 각계의 엘리트가 가족을 돌보느라 바빠 각자도생 위주로 나아가는 현실을 시사해주는 건 분명하다.
지역언론은 자기 지역 문제에 치중하느라 지방 공통의 불이익이나 문제를 지적하고 새로운 제안을 하는 데엔 비교적 소홀하다. 지방에서 지방 전체의 문제로 시위·집회를 하는 법은 없다. 자기 지역 현안과 관련돼 있을 때에만 시위·집회를 하며, 중요한 사안이면 혈서·삭발도 불사하는 상경 시위로까지 이어진다. 지방이 자기 지역의 이익만 챙기는 식으로 파편화돼 있어 국가적 차원의 지방소멸을 막는 데엔 별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지역 중심의 투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혁신 중심이라면 그건 크게 반길 일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아니다. 거의 대부분 중앙 권력의 줄을 겨냥한 투쟁이어서 지방 전체를 놓고 보면 제로섬게임으로 지방의 중앙 종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이런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게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뭐"라는 식으로 넘어가곤 한다. 이런 세월이 반세기 넘게 지속되면서 우리가 직면하게 된 현실이 바로 지방소멸과 서울멸종이다.
이게 정녕 우리의 운명이라면 감내할 수밖에 없다. 아니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를 노래하며 춤을 춰도 좋겠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운명은 아니다. 각자도생의 덫에서 빠져나갈 생각이 없는 우리의 둔감함이거나 어리석음일 뿐이다. 그 어떤 운명이라 한들 "운명의 멱살을 잡고 싶다"고 했던 악성(樂聖) 베토벤처럼 운명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보는 시도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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