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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인생 공연

2025-04-08
[문화산책] 인생 공연
박영빈 달서가족문화센터 운영지원팀장
몇 년 전 여동생이 사는 호주 멜버른에 갔다. 여동생은 2020년 코로나 시절 외로이 아들을 낳았다. 육아에 지친 동생을 위해 공연 선물을 하고팠다. 때마침 멜버른 아트센터에서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 중이었다. 큰맘 먹고 앞자리로 티켓을 예매했다. 행복한 표정의 동생을 상상하며 옆을 봤다. 동생은 고된 육아 때문인지 어두운 조명 속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나는 깨울 수 없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그렇게 내 인생 공연이 되었다. 말 그대로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또 다른 인생 공연을 꼽으라면 단연 예술아카데미 수강생 발표회다. 시립예술단에서 일할 때다. 가곡교실 시니어 수강생들이 무대 위에서 한 곡씩 연습한 노래를 부른다. 음정이 틀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하게 이어가는 모습이 뭉클했다. 한 소절 한 소절 담담하게 최선을 다해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무대 위에서 내가 본 것은 그들의 연주 실력이 아니라 준비 과정이었다. 이들의 인생을 본 것이다.

퍼포먼스가 화려한 공연도 인상 깊다. 러시아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좋아한다. 템포가 굉장히 빠른 곡으로 유명하다. 이 곡을 알게 된 건 막심 므라비차의 연주를 보고 나서다. 때마침 작년 10월 크로아티아 피아니스트 막심 므라비차가 내한해 대구에도 왔다. 190㎝ 장신의 연주자가 뿜어내는 파워풀한 연주는 화려한 조명과 미니 오케스트라 속에서도 돋보였다. 공연 내내 두 손을 모아 쥐고 다른 세상에 온 마냥 빠져들었다. 이 순간만큼 근심, 걱정, 고민 따위는 없다.

인생 공연은 이처럼 나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공연 내용 자체가 나에게 울림을 줄 수도 있다. 그날의 분위기, 연주자의 모습, 무대 장치 등 다른 요소들도 충분히 영향을 준다. 공연을 특별한 날에만 볼 필요는 없다. 큰 공연장이든 작은 공연장이든 관심 가거나 볼 만한 공연이다 싶으면 기꺼이 찾아가 보자. 어느 공연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줄지 아무도 모른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 나도 가끔은 평소 보지 못하는 지인을 만날 때가 있다. 인생 공연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누구에게나 인생 ○○은 있다. 인생 공연처럼 인생 영화, 인생 명언, 인생 책 등 내 삶에 영향을 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그 자체로 감동이거나 위로가 된다. 삶을 바꾸기도 한다. 반대로 지금까지 나의 인생 ○○이 된 것들을 돌아보면 내 모습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발견한다. 나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 인생 ○○은 인생 나침반이다. 내 삶을 보다 재미있게, 보다 의미 있는 길로 안내한다.

당신의 인생 ○○은 무엇인가요?

박영빈<달서가족문화센터 운영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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