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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칼럼] 나는 진보다, '진짜 보수'다

2025-04-21

보수·진보 정치 프레이밍

이념적 진보는 수구적인데

용어의 선점으로 우위에 서

보수의 대척점은 자유적

차라리 좌·우파 구분이 타당

[박재일 칼럼] 나는 진보다, 진짜 보수다
논설실장
언론인이자 유투버 논객인 정규재씨에게 방송 사회자가 물었다. 당신은 '보수'이지요. 그의 답이 재미있다. "아뇨, 난 진보예요. 진짜 보수란 말입니다". 진보와 보수란 단어를 동시에 섞었다는 것은 두 말의 뉘앙스(어감)에 뭔가 물음표가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오래 전 신문사 편집국에서 한 선배 기자가 나를 지목하면서 "저 친구는 보수이겠지"라고 해서 살짝 불쾌했다. '뭘 안다고 특정인의 정치적 성향을 저렇게 쉽게 재단하지?'란 감정이 들었다. 그즈음 사실 난 노무현을 찍었다. 일전에 TV토론에서 사회자가 나를 "보수 논객 아닙니까. 보수들은 탄핵 정국에 좀 처지가 어렵지 않아요"하고 꼬집기도 했다. 역시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정치 용어는 태생적으로 서구에서 온 것이다. 보수(保守)는 영어로 conservative, 진보(進步)는 progressive에 해당된다. 미국에서 공화당은 보수주의자로 통칭된다. 그런데 민주당은 진보 아닌 자유적(liberal)이란 용어가 더 차용된다. '챗gpt'에 물어보니 미국에서 '진보 progressive'는 지역에 따라 혐오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고 한다.

'프레이밍(Framing)' 이란 말이 있다. 틀에 가둔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상대 진영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수법이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치기 하는 것도 그런 방식이다. 국어 사전적으로 진보는 '앞으로 나아간다. 수준을 높인다'는 뜻이고, 보수는 그냥 '옹호하고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감으로 따진다면 진보는 뭔가 멋있어 보이고, 보수는 한편 고루해 보인다. 그런 용어 풀이에 다다르면 한국의 정치가 보수와 진보로 딱 나누는 것이 정당한가란 의문이 있다.

한국정치에서 이른바 작금의 진보 진영은 '용어(terminology) 선점'을 한 득이 크다. 우린 근대화와 민주화란 엄청난 진전을 이뤄냈다. 그건 대한민국 전체의 진보였는데 언제부터인가 특정 정치집단이 용어를 선점하면서 묘한 상황이 돼 버렸다.

한국 정치사를 일별하면 이념투쟁을 빼놓을 수 없다. 1945년 이후 해방공간은 좌·우파의 격전장이었고, 지금도 그 응어리가 남아 있다. 용공(容共), 친북(親北)의 프레이밍 용어는 여전히 자극적이다. 실제로 1980년 전후 대학가 운동권은 미국을 제국주의의 축으로 보고, 반미(反美)에 김일성 주체사상까지 추종하는 그룹이 존재했다. 일부는 지금 제도권 정당에 입문했다. 세계적으로 이념적 좌파그룹은 수구적이 됐다. 그걸 지금 주장한다면 결코 진보가 될 수 없다.

정치 성향은 타고난다는 분석도 있지만, 정치교육과 인생경험을 통해 변하기도 한다. 문제는 정치학자나 여론조사자들이 이를 2차원적 직선의 스펙트럼으로 단순화 한다는 점이다. 개개인의 정치성향은 어쩌면 둥근 공간 안에서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조선왕조에서 좌의정과 우의정은 임금이 바라봤을 때 좌측이냐 우측이냐로 구분했다. 영국의회도 앉은 좌석에 따라 좌·우파로 나뉘었다. 한국정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려면 가치중립적 용어가 요구된다. 보수냐 진보냐 묻지 말고 좌·우파로 나누는 것이 더 유용해 보인다. 영어식이면 보수 진보가 아니라 '당신은 보수적인가 아니면 자유적인가'로 질문하는 것이 더 예의 갖춘 방식일지 모른다. 그게 어려우면 직설적으로 국민의힘인가 민주당 편인가로 물어보는 게 정확할 수도 있겠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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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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