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진정한 전환점은
오히려 계획표 바깥서 찾아와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기보다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 속에서
새로운 변화 찾는 유연함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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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
사건이란 무엇인가, 사건의 특성은 두 가지다. 첫째, 의도성이 없다. 우리가 계획하지 않았는데도 발생한다. 둘째, 사후성이 있다.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온전히 깨닫는다. 사건은 기존의 존재론적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앞에 중요한 순간이 있어도, 그 가치를 즉시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 혁명이나 중요한 과학적 발견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만남과 같은 개인적 경험까지. 이들은 모두 기존의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여는 사건들이다. 일상 곳곳에 이런 사건의 씨앗은 숨어 있다. 출근길에 마주친 낯선 이의 미소, 책장을 넘기다 눈에 들어온 한 문장, 우연한 대화 속 깊은 울림. 이런 사소해 보이는 순간이 마음 깊은 곳과 공명할 때, 우리는 미세한 변화의 파동을 느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순간들이 단순한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바디우가 말하는 '충실성(fidelity)'이란 사건이 열어젖힌 가능성에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태도다. 이러한 충실성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변화의 주체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계획하고 효율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모든 것이 목적과 성과로 환산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용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을 쉽게 지나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삶의 진정한 전환점은 계획표 바깥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바디우가 말한 '사건'이나 그리스인들이 말한 질적인 시간, '카이로스'는 바로 그런 계산 불가능한 시간의 균열을 가리킨다.
사건을 통제하려 애쓰는 일은 무의미하다. 바디우가 강조했듯 사건은 본래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기에,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개입과 응답의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어떻게 응답하고 충실할 것인가 하는 우리의 태도다. 디지털 기기와 알고리즘이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시대에,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 열린 자세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언젠가 우리는 평범했던 어느 오후를 떠올리며 '그건 내게 일어난 작은 지진이었지'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순간을 '사건'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지진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의 파문을 일으켰는가, 그리고 우리가 그 파문에 얼마나 충실했는가 하는 점이다. 크로노스가 갈라지고 카이로스가 열리는 찰나, 우리는 삶의 진정한 리듬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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