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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봉화 'K-베트남 밸리'

2025-04-24
[취재수첩] 봉화 K-베트남 밸리
황준오기자〈사회3팀〉
관광지가 아니다. 선언이자 승부수다.

경북 봉화군이 추진 중인 'K-베트남 밸리'는 단순한 개발이 아닌, 소멸하는 지방을 되살리기 위한 절박한 생존 전략이다. 인구절벽과 공동화라는 시대적 위기 앞에서 박현국 군수는 이 프로젝트에 '정주(定住)'라는 희망을 걸었다.

이 대담한 구상은 800여년 전, 고려 땅으로 떠밀려온 베트남 '리 왕조' 왕자의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봉화 창평리에 뿌리를 내린 그는 '화산 이씨'로 거듭났고, 그 후손들은 오늘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역사는 우연이 아니며, K-베트남 밸리는 바로 그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교감의 공간이다.

처음엔 관광 위주의 사업이었지만, 박 군수는 철학과 방향성을 송두리째 바꿨다. '체류' 대신 '정착' '방문' 대신 '삶'을 선택했다. 역사문화체험관, 다문화국제학교, 의료와 주거를 아우르는 정주형 인프라가 2천억원 규모로 착실히 구축되고 있다. 봉화는 이제 외국인을 손님이 아닌 이웃이자 함께 살아갈 공동체 구성원으로 맞이하고 있다.

한국 내 베트남인은 이미 25만명, 연간 관광객은 40만명을 넘는다. 봉화가 맞닥뜨린 지방소멸 위기를 해결할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K-베트남 밸리는 이제 지방 차원의 프로젝트를 넘어 국가적 관심과 외교·문화의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창평리는 단순한 역사 유적지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한국 속의 베트남'으로 변모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마스터플랜과 콘텐츠 개발 용역이 마무리됐으며, 부지 매입과 특구 지정 절차 또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오는 2033년까지 1차 사업의 완성을 목표로, 올해는 다문화커뮤니티센터를 시작으로 창평저수지 연꽃 조망시설과 충효공원 등 주요 기반시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봉화가 그리는 미래는 단순하지 않다. 베트남인이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인생을 설계하는 곳. 혈연과 국적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립적인 도시. 이것은 유입의 문제를 넘어선 정주의 철학이다. 하지만, 도시는 의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육과 의료, 언어와 노동, 문화가 한 치의 빈틈없이 준비돼야 한다. 행정은 단지 기반시설 조성에 그쳐선 안 된다. 정착을 위한 세밀한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 문화적 이해가 어우러져야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

'K-베트남 밸리'는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다. 지방이 생존을 위해 내디딘 하나의 실험이며, 한국 사회가 다가올 미래를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살아있는 모형이다. 진정한 '베트남 타운'은 잠시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을 내려놓고 삶을 꽃피울 수 있는 땅에서만 비로소 완성된다.황준오기자〈사회3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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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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