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감투 하나 쓰겠다고
대선판 기웃거리는 법조인
수치심 넘어 분노가 치밀어
정신적 문제 없는 정치인이
활동할 수 있는 판이 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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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몇 시간 후 그녀가 다시 찾아왔을 때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시는 마스크가 일상화된 코로나19의 정점이었다. 사무실 손잡이가 의외로 방역의 사각지대임을 인식하고, 주기적으로 소독하는 것이었다. '장애인이니까 단순하고 기계적인 업무를 맡겼구나'라는 오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 곳곳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깨졌다.
필자가 근무하는 법무법인 율촌에서는 이미 2010년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협력해 장애인을 위한 직무를 개발하였다. 청소 등 제한적인 업무를 넘어 사무보조까지 직군을 확대하였다. 이후 내부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사무보조에서 비서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 장애를 가진 변호사를 영입하고, 다양한 직무교육과 멘토링, 장애인과 비장애인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었다. 이런 오랜 노력 덕분에 현재 상시근로자 1천35명 중 24명이 장애인이고, 이 중 22명은 중증 장애인이다. 하루에 몇 번씩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만나며 동료로서 동행하고 있다. 단 한 번도 그들이 낯설거나 불편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멀리서 불편하게 걸어오다가 마주치면 먼저 밝게 웃으며 건네는 인사가 정겹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몇 층 가느냐며 버튼을 눌러주는 배려는 내릴 때까지 휴대폰만 보는 비장애인보다 훨씬 따뜻하다. 탕비실에서 매일 찻잔 등을 설거지하는 장애인에게 핸드크림을 선물했더니 사탕을 하나 건네는데, 그 달콤함이 가슴까지 전달되는 것 같았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의하면 상시 5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민간기업의 장애인 법정 의무 고용률은 근로자 총수의 3.1% 이상이다. 법률신문이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국내 주요 12개 로펌의 장애인 고용현황을 조사한 결과, 예상대로 법무법인 율촌이 장애인 고용률 1위였다.
요즘 법조인들이 나라를 망친다는 질책을 많이 받는다. 사건이 누구에게 배당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면 사법기관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국민은 이제 담당 판검사와 연줄 있는 전관뿐만 아니라 정치적 성향이 같은 변호사까지 찾아다닐 것이다. 전관예우보다 더 광범위하고 심각한 폐해를 불러일으킬 온갖 연고주의가 판칠 것이다.
현재 여야의 유력 대권주자들을 비롯하여 정치권 주요 인사 중 상당수가 법조인 출신이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역임하였기에 누구보다도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변호사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법조계에서 자리 못 잡은 생계형이 상당수이다. 판검사로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형도 적지 않다. 법꾸라지나 법비(法匪)라는 말로도 부족한 '문제적 법조인'들이다. 윤리의식이 단순한 업무도 맡기지 못할 정신적 중증 장애인 수준도 있다.
먹고 살려고, 또는 새로운 감투 하나 쓰겠다고 저렇게까지 법조인의 자존심을 팽개치면서 동료 법조인들까지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지 분노가 치민다. 주권자인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치인을 채용하는 고용주이다. 예상치 못한 대선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동행하는 것이 낯설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정신적 장애가 없는 정치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판이 열렸으면 한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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