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대구간송미술관이 뭐길래](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5/news-p.v1.20250501.332e29bd5bcd4099a32da3672a73479d_P1.jpg)
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대학 졸업 후 줄곧 서울 '강남 사모님'으로 살아온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도대체 대구간송미술관이 뭐냐." 뜬금없는 질문의 이유는 이렇다. 시골이라며 대구에 살고 계신 할머니 댁에 가는 것도 내켜하지 않던 아들이 친구들과 벌써 몇 번이나 대구의 간송미술관을 다녀갔다는 것. 서울에도 차고 넘치는 것이 미술관인데 왜 대구까지 가는지 알 수 없다며 친구는 의아해했다. 어쨌거나 고향 대구가 청년들의 핫한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듯해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어쩌면 조만간 내친구도 대구간송미술관의 정체를 확인하러 대구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은 이런 문화의 힘이다. 대구 청년 인구의 서울 수도권 유출의 가장 큰 이유가 일자리와 더불어 문화 인프라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실제로 지난 한 해 공연의 79.1%는 수도권에서 이뤄졌고 이 중 65.1%가 서울에서 선보였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공연이 열린 지역이 대구인데 그것도 겨우 8.2%에 불과했다. 다른 도시는 수치라 할 것도 없다. 최근 발표된 국립예술단체의 지역 이전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지난달 정부는 지역문화 균형발전을 핵심전략으로 내세운 '문화한국 2035'를 발표했다. 그 첫 번째 추진과제가 국립예술단체·기관의 지역 이전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계획대로라면 서울예술단은 국립아시아예술단으로 이름을 바꿔 내년 상반기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국립오페라단은 대구로의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다른 국립예술단체도 단계적으로 옮길 모양이다. 국립박물관과 국립미술관, 국립국악원 등 문화예술기관의 지역 이전 및 분관 설치도 추진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세종시로 이전하고 대구에는 국립 근대 미술관을 세워 지역의 미술관과 박물관 인프라를 확충한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한국영상자료원 등 관련 공공기관의 지역 이전도 계획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기대가 높다. 그동안 지역 소멸을 내세우며 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으나 그 효과는 미미했다. 돈만 내려주면 사람이 모일 것이라는 계산으로 실시한 여러 사업은 지역의 인구 감소를 막지 못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여러 학자의 분석에서 지역민의 애착과 거버넌스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삶에 만족하고 자신이 주체라고 생각하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욕구는 오직 문화와 공동체 의식만이 해결해줄 수 있다.
지역에 국립문화예술단체가 내려와 지역에 차별화된 문화예술의 터전을 형성한다면, 그래서 지역민의 수준 높은 문화의 향유가 가능해진다면, 지역의 예술가단체와 협업을 통해 예술생태계가 활성화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지역민의 자긍심이 높아질 수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지방분권시대의 완성이라는 점에서도 국립예술단체·기관의 지역 이전은 매우 고무적이다.
BBC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1990년대 런던에서 맨체스터로 이전하면서 맨체스터가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로 성장한 것처럼 유네스코 창의도시 대구, 국내 유일의 오페라 제작극장을 가진 대구, 21년째 국제 오페라축제를 개최해온 대구도 국립오페라단의 이전으로 오페라의 세계적 중심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역문화의 융성 속에서 도시는 숨을 쉬고, 그 속에 사람이 깃들 수 있다.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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