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안 브레인롯 새 유행
AI 창작시대의 상징적 현상
기술과 예술, 정교와 조악함
전문가의 경계 흐려진 지금
문화 진화 중요 분기점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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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
밈(meme)이란 유전자의 개념에서 파생된 말로, 인터넷에서는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공유하고 변형하며 퍼뜨리는 문화적 조각'을 뜻한다. 요즘 유행하는 밈들은 대부분 짧고 강렬하다.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그중에서도 유독 황당한 감각으로 주목받고 있다. AI가 만든 저해상도 이미지, 어색한 더빙, 설정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이야기들이 결합된 이 밈은 보는 사람의 뇌가 "썩어버리는 것 같다"는 말에서 이름을 땄다. 언뜻 보면 단순한 장난이라고 보기에는 그 유행과 파급력이 대단하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도 너무나 크다.
이 독특한 밈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첨단 기술이 오히려 조악함을 창조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AI는 그림, 영상, 음성, 음악까지 대부분의 창작을 할 만큼 정교해졌다. 그런데 정작 이 밈은 그런 기술을 이용해 일부러 어설프고 이상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합성의 결과지만 어쩐지 '날 것 그대로의 모습' 같다. 이러한 역설적 매력은 의미심장하다. 너무 매끈하고 예쁘게 다듬어진 콘텐츠에 지친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부조화에서 신선함과 해방감을 느낀다. 마치 20세기 초 초현실주의처럼, 기존 미학에 대한 저항이자 새로운 감성의 출현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이런 감성의 출현은 창작의 문턱이 사라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구나 AI 툴을 통해 몇 분 안에 자신만의 기괴한 캐릭터와 배경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건 그것이 얼마나 정교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느냐인 셈이다. 기술 민주화의 시대에 기술은 평준화됐고, 창작의 힘은 '감각'과 '타이밍'에 달리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창작 방식뿐만 아니라 창작의 주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야기를 만들고, 퍼뜨리는 주체도 달라졌다. 과거엔 대형 미디어나 게임이 어떤 캐릭터가 유행할지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틱톡을 하는 평범한 10대도 수백만 명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마케팅도, 미디어의 승인도 필요 없다. 이름도 제대로 읽히지 않는 캐릭터가 전 세계를 넘나들며 인기를 끌고, 심지어 문화적·종교적 경계도 가볍게 넘나든다. 이는 분명 인터넷이 만들어낸 완전히 새로운 내러티브 생태계다. 이야기를 만들고 퍼뜨리는 힘이 이제 모두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현상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처음엔 그저 이상하고 웃긴 밈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디지털 문화의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결국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AI 시대의 상징적인 현상이다. 기술과 예술, 정교함과 조악함, 전문가와 일반인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금, 이 이상한 밈은 너무나도 2025년 다운 방식으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우리는 아마도 문화 진화의 한 중요한 분기점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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