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피해 회복도 잠시…우박이 덮친 사과밭
"이제 일어섰다 싶었는데"… 농민의 절망
도내 1,700여 농가 피해…"지금부터 더 중요"

안동시 길안면의 한 과수원에 우박이 쏟아져 큰 피해를 입었다. 안동시 제공

어린 묘목 주변에 바둑알만한 우박으로 인해 떨어진 잎과 그 옆엔 우박이 쌓여 있있다. 안동시 제공
사과꽃이 지고 열매가 맺힐 무렵, 안동시 길안면의 사과밭은 다시금 고요한 재앙에 잠겼다. 며칠 전 갑작스레 쏟아진 우박은 이미 산불로 시름 깊던 과수농가에 또 한 번의 직격탄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싶었어요. 불은 피해 갔는데 우박은 피할 틈도 없이 덮쳐버렸습니다."
박모 씨(60대)는 사과나무 사이에 무릎 꿇고 앉아 멍든 열매 하나하나를 만져본다. 사과나무 600여 그루, 살아남았다 생각했던 그 나무들이 이제는 대부분 흠집투성이다. 타들어간 가지에 새순을 틔웠던 나무들도, 이제는 얼룩진 상처만 남았다.
우박은 20여 분간 바둑알만한 얼음덩이로 땅을 후벼 팠다. 사과밭 주변은 마치 한겨울처럼 하얗게 뒤덮였고, 나뭇잎은 찢기고 과실은 움푹 패였다. 박 씨는 피해율을 80% 이상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박 씨는"산불에다 우박까지… 올해 농사, 무사히 끝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산불 이후 타버린 나무를 정리하고 새로 심은 어린 묘목들도 우박을 견디지 못했다. 아직 뿌리도 제대로 내리지 못한 채 하늘에서 쏟아진 얼음에 맞아 꺾여버렸다.
청송의 한 마을에서 사과와 고추 농사를 함께 짓는 김모 씨(50대)는 산불 피해 직후 겨우 일어서 다시 농사에 몰두하던 찰나 또다시 우박을 맞고 허탈해했다.
김 씨는 "산불 나고 정신없이 복구하고, 이제는 제법 나무도 자리 잡았다"며 "이번 우박이 또 훑고 가버려 고추도 줄기째 꺾이고, 사과는 따지도 못하고 버려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하늘이 무섭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우박 피해 직후 고추밭은 이미 병해가 퍼지기 시작했고, 사과밭도 이대로 두면 수확은 물론 나무 자체가 상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김 씨는 "진짜 이제는 뭐라도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농민들 혼자서는 이 이상 못 버틴다"고 정부의 도움을 호소했다.
이번 우박은 안동, 청송 등 경북 지역에서 1천700여 농가에 피해를 입혔다. 피해 면적만 약 970㏊에 이르고, 주요 작물은 사과, 복숭아, 고추 등이 포함됐다.
안동시농업기술센터는 즉시 현장 대응에 나섰다. 사과밭의 경우 우선 손상된 과실을 솎되, 나무의 생육 상태를 고려해 일부는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2차 감염을 막기 위한 충분한 살균제 살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추밭은 더 민감하다. 우박에 잎과 가지가 상한 상태에선 병원균 침입이 쉽다. 피해 발생 1주일 이내 살균제 살포가 필수며, 4종 복합비료나 0.3% 요소액을 주기적으로 뿌려야 생육 회복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우박은 돌발적이고 지역적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단시간에 막대한 피해를 남길 수 있다"며 "현장 기술지원을 강화해 피해 확산을 막고 농가 생계 유지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봄에 덮친 불, 여름 앞두고 떨어진 얼음. 과수농가의 한 해는 아직 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농심은 더욱 타들어가고 있다.

피재윤

손병현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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