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이재명 대통령은 진보정권이 배출한 첫 TK출신 대통령이다. 한국의 진보정권은 DJP연합으로 호남출신 김대중을 처음 당선시킨 이래 영남출신을 앞세워 재집권에 성공했다. 노무현, 문재인 등 PK출신들은 실제 고향에서 상당한 득표율을 올려 영남공략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재명은 이번 21대 대선에서 정작 고향인 TK에서는 30%도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을 올렸다. 진보정당으로선 1971년 7대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가 거둔 31.89%가 TK의 최고 득표였다. 이재명은 그가 나고 자란 TK에서 '민주당 30% 벽'을 깨는데 실패한 것이다. 김부겸 총괄 선대위원장이 "솔직히 이번에는 30%이상 득표할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아쉬워할 정도였다.
이재명의 당선은 출신지역 TK의 지지덕분이 아니라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의 압도적 지지에다 윤석열에 실망한 수도권의 몰표가 주된 원인이었다. 박정희부터 박근혜까지 TK출신 보수 대통령들이 TK의 강력한 지원으로 당선된 것과 대조적이다. 한마디로 이재명이야말로 TK에 정치적 빚이 없는 첫 TK출신 대통령인 것이다.
아니, 이재명으로선 정치적 빚의 유무를 떠나 인간적으로 TK에 섭섭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가 대선 캠페인 도중 고향인 안동을 찾아 "경북이 제 출발점이고 종착점인데, 고향분들은 왜 이렇게 저를 어여삐 여겨주지 않느냐"고 한 것은 단순히 정치적 발언으로만 보기 어렵다. 이대통령이라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수구지심(首丘之心)이 왜 없겠는가. 수구지심은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고향 언덕쪽에 두는 행동에서 유래된 말이다. 거친 투쟁 끝에 일국의 최고 정치인으로 자리잡은 그가 고향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뜨거운 지지를 얻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은 적어도 문재인보다는, 아니 김영삼보다도 통이 큰 정치인임이 이번 조각(組閣)에서 입증되었다. 혹시 있을 인간적 섭섭함을 뒤로하고 지역안배와 탕평책에 입각한 내각 인선을 이뤄낸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구윤철 기획재정부장관과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의 발탁이다. 우선 기재부 장관은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끄는 경제부총리로서, 내각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다. 당연히 민주당의 기반인 호남이나 운동권 좌파그룹에서 '당선 청구서'를 내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정통관료에다 TK출신인 구윤철을 선택했다.
사실 구윤철은 노무현이 발탁한 인재다. 참여정부시절 대통령실 인사제도비서관에서 인사수석대행, 국정상황실장까지 고속 승진했고, 문재인 정부때는 김부겸 총리를 보좌하며 최장수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TK가 소외된 민주당정부때마다 핵심요직을 맡아 TK의 소통 창구가 되어온 인물이다. 실력과 배짱, 경제혁신에 대한 소신과 정치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오을 후보자 인선은 그가 어렵게 보수의 둥지를 떠나 용기있게 이재명을 지지해준 정치적 보은으로 보인다. 특히 안동권씨 가문으로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지냈다는 점에서 그는 이대통령의 '고향사랑'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TK가 지역발전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최대 주주는 역시 호남일 것이다. TK로선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구윤철, 권오을 장관에게 의존해야만 한다. 'TK 홀대론'이 나왔던 YS정부에서 이석채 장관과 김광림 청와대 비서관이 했던 가교(架橋) 역할을 기대한다. TK도 현정부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내려놓고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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