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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충북 영동 강선대] 강물에 비친 낙락장송·석대…선녀도 반했다

2025-07-17 19:20
강선대. 옛날 선녀 모녀가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데, 강물에 어른비치는 낙락장송과 석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만 훨훨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전해진다.

강선대. 옛날 선녀 모녀가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데, 강물에 어른비치는 낙락장송과 석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만 훨훨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전해진다.

영동 양산면 봉곡리의 금강은 서쪽에서 흘러와 남동쪽으로 휙 돌아 북류한다. 강물이 휙 돌아서기 직전, 모질게 떼어 놓은 인연처럼 석대(石臺)가 서있다. 망부석 같은 석대는 낙락장송에 둘러싸여 감춰져 있는데, 솔숲 우듬지 위로 육모지붕의 추녀마루가 쏙 드러나 있다. 그제야 사방으로 퍼지는 지붕과 붉은 기둥의 정자가 오롯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팔랑거리는 치마를 입은 붉은 다리의 소랑(小娘) 같아서 석대도 낙락장송도 허허하며 어여삐 보호하는 듯하다. 옛날, 옛날 선녀 모녀가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데, 강물에 어른비치는 낙락장송과 석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만 훨훨 내려와 목욕을 했단다. 그렇게 신선이 내려온 곳이라 하여 이곳은 강선대(降仙臺)라 불린다.


강선대와 등선정. 강선대에 신선이 내려왔으니, 신선이 올라가는 자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순정한 이치겠다.

강선대와 등선정. 강선대에 신선이 내려왔으니, 신선이 올라가는 자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순정한 이치겠다.

뭍과 강선대는 강선교로 연결되어 있다. 옛 정자는 사라지고 지금의 것은 1954년에 함양여씨 문중에서 지은 것이라 한다.

뭍과 강선대는 강선교로 연결되어 있다. 옛 정자는 사라지고 지금의 것은 1954년에 함양여씨 문중에서 지은 것이라 한다.

◆ 강선대


때때로 선녀가 하강하던 시대에 강선대에는 정자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선녀의 이야기는 수천 년 동안 전해져 어느 날 사람들은 대에 올라 짐짓 풍경을 감상하는 척 선녀를 기다렸을 테고,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정자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그 옛 정자도 사라지고 지금의 것은 1954년에 함양여씨 문중에서 지은 것이라 한다. 뭍과 강선대는 강선교로 연결되어 있다. 다리 입구 솔숲에 작은 육각정자 하나가 '등선정' 현판을 달고 있다. 강선대에 신선이 내려왔으니, 신선이 올라가는 자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순정한 이치겠다. 다리를 건너며 좌우를 바라본다. 초록빛의 물, 물가의 두툼한 모래밭, 모래밭에 자라난 풀들, 어제 혹은 그제보다 수위가 낮아졌음을 보여주는 모래의 단면, 강으로 쏟아지려는 산자락이나 모래밭에 뿌리내린 수목의 대지를 붙들어 동여 놓은 석조 옹벽들, 그리고 도로를 지지하는 콘크리트옹벽과 그 위의 버스정류장과 가깝고 낮은 현대의 집들을 빙그르 훠이 본다. 다리 난간에 선 솟대가 휘휘 몸을 흔들며 휘파람을 부는 것 같다.


솔가지 사이로 멀리 물빛다리가 보인다. 물 가운데에 머리만 내어 놓은 바위는 용암이다.

솔가지 사이로 멀리 물빛다리가 보인다. 물 가운데에 머리만 내어 놓은 바위는 용암이다.

길게 늘어진 소나무 가지를 신중히 피하며 몇 계단을 거쳐 강선대에 오른다. 석대 위에 앉은 육각 정자에 '강선대' 현판이 걸려 있다. 강선대를 둘러싼 소나무들은 몹시 감탄스럽다. 무용수의 근육 같은 수피에 고고한 혈색이 스며있다. 선녀가 반할 만 하다. 소나무는 양기가 강한 바위와 음기를 품은 물을 연결해 주고 있다고 한다. 강이 솨솨 소리를 낸다. 강 너머는 송호국민관광지다. 솔가지 사이로 멀리 물빛다리가 보인다. 조금 더 가까운 물 가운데에 머리만 내어 놓은 바위는 용암(龍岩)이다. 용암은 원래 용이었다. 용은 강선대에 내려온 아름다운 선녀를 훔쳐보다 그만 승천하지 못하고 바위가 되었다. 용은 지금도 강 한가운데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강선대를 바라본다. 영동 양산면을 끼고 흐르는 금강 일대 명승 여덟 곳을 '양산팔경'이라 부르는데 그중 제2경이 강선대, 제8경이 용암이다.


동악 이안눌의 '유강선대' 편액. 이안눌은 목민관이면서 청백리로 존경받았고 조선후기 3대 시성 중 한분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다.

동악 이안눌의 '유강선대' 편액. 이안눌은 목민관이면서 청백리로 존경받았고 조선후기 3대 시성 중 한분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다.

◆ 유강선대


정자 내부에 여러 편액이 걸려 있다. 하나는 이 누대의 건축 내력을 찬양한 '찬문병사실(贊文幷事實)', 또 하나는 같은 해에 쓴 기문인 '강선대기(降仙臺記)', 그리고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는 시판이 있다. 이안눌은 목민관이면서 청백리로 존경받았고 조선후기 3대 시성(詩聖) 중 한분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다. 그가 남긴 시는 4379수나 되고 그의 시작(詩作)은 쉬이 이태백에 비유되곤 했다고 한다. 동악선생은 이곳에 와 '유강선대(遊降仙臺)'라는 칠언절구를 남겼다. '하늘 신선이 이 대에 내렸음을 들었나니/ 옥피리가 자줏빛 구름을 몰아오더라/ 아름다운 수레 이미 사라져 찾을 길 없는데/ 오직 양쪽 강 언덕에 핀 복사꽃만 보노라/ 백척간두에 높은 대 하나 있고/ 비 갠 모래 눈과 같고 물은 이끼 같구나/ 물가의 꽃은 지고 밤바람도 저무는데/ 멀리 신선을 찾아 달밤에 노래를 듣노라.' 강선대 마을 벽화에 쓰여 있는 풀이다.


강선대에 유(遊)한 사람은 셀 수 없겠으나 문득 한 소년이 생각난다. 1978년 영화 '소나기'의 소년. 소나기가 그치고, 불어난 물에 징검다리가 잠기자 소년은 소녀를 업고 강을 건넌다. 그리고 집으로 달려가 가방을 던져놓고 달려간 곳이 강선대다. 소년은 "야---"소리를 지르고는 금강위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노래를 외친다. "내가 놀던 정든 시골길 소달구지 덜컹대던 길 시냇물이 흘러내리던..." 음치였다. 씩씩한 음치의 노래라서 마음이 고달팠다. 김동리 원작의 1972년 영화 '무녀도'의 마지막 장면도 이곳이다. 백색 장삼을 입고 흰 고깔을 쓴 모화(윤정희 역)가 '물가의 두툼한 모래밭'에서부터 '초록빛의 물'속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리고 결국 하얀 고깔만 둥둥 뜬 채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지금도 그 모래밭과 초록 물빛을 알아볼 수 있다.


강선대 주차장 앞에 있는 봉곡리 마을 조형물. 뒤편 담벼락에서 동악선생의 유강선대 시를 볼 수 있다.

강선대 주차장 앞에 있는 봉곡리 마을 조형물. 뒤편 담벼락에서 동악선생의 유강선대 시를 볼 수 있다.

◆ 강변마을 봉곡리


끝난 영화를 몇 컷 돌아보면, 거기에는 모래밭 너머 몽글몽글한 초가집들이 있다. 옛 봉곡리의 모습을 그렇게 흘깃 반가이 본다. 봉곡리는 봉곡교를 중심으로 윗마을엔 함양여씨가, 아랫마을엔 구례장씨가 조상 대대로 살았던 집성촌이다. 원래 옥천 땅이었는데 고종 때 영동군에 편입되었다. 자연부락으로 자라벌, 봉곡(황골), 기곡, 우당골 등이 있는데 금강이 남동으로 휘돌면서 만들어 놓은 반달 모양의 땅이 자라벌이다. 봄날이면 자라벌의 금강 둔치가 노란 금계국으로 뒤덮인다고 한다.


봉곡리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이의정(李義精)의 고향이다. 그는 고려 후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의 8대손이며 율곡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해 보령현감 등을 지냈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해 진주로 달려가 싸웠다. 그러다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왜적이 진주성 남문을 깨뜨리고 들어오자 남강에 몸을 던졌다. 마을 뒷산에 그의 묘와 사당인 충의사(忠義祠)가 있다. 골목은 조용하다. 영화 소나기에 나왔던 고택도 보이고, 세련된 카페와 아기자기한 식당과 친구네 외갓집 같은 민박도 있다. 그리고 엄청난 은행나무가 있다. 오백년이라고도 하고 천년이라고도 한다. 안타깝게도 수년 전 태풍에 가지가 부러져 지금은 쓸쓸한 기립의 형상이다. 은행나무는 선녀를 봤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망부석과 같은 모습은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용암처럼….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봉곡리 은행나무.안타깝게도 수년 전 태풍에 가지가 부러져 지금은 쓸쓸한 기립의 형상이다.

봉곡리 은행나무.안타깝게도 수년 전 태풍에 가지가 부러져 지금은 쓸쓸한 기립의 형상이다.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대전 방향으로 가다 황간IC로 나간다. 황간삼거리 회전교차로에서 9시 방향으로 나가 마산삼거리에서 좌회전, 다시 영동마산교차로에서 우회전해 4번 국도에 올라 직진한다. 영동교차로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대전, 영동 방향으로 가다 묵정교차로에서 묵정리방향 오른쪽으로 나가 직진, 마포삼거리에서 우회전해 750미터 정도 직진 후 금산, 양산방면으로 좌회전해 68번지방도를 타고 간다. 양산면소재의 가곡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송호관광지 입구 지나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봉곡교를 건너면 바로 왼편에 강선대 주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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