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형산강 물길 기반으로 설계된 도시… 강이 도달하는 곳마다 신화와 마을이 있다

경주 전체를 감싸고 흐르는 형산강. 경주시 서면에서 흘러내린 형산강은 알천과 남천 같은 지류를 품으며 경주 도심을 굽이돌고 포항 동해로 빠져나간다. 신라시대 수도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하천 중 하나로 신라 때의 고분이나 유적들이 많다. 경주시는 2022년부터 '신(新)형산강프로젝트'를 통해 안전하고 활력 넘치는 수변공간 조성과 친환경 생태 복원에 주력해 오고 있다.
월성 중심으로 서쪽에 서천
북쪽에 북천, 남쪽에는 남천
경주와 동해를 연결한 수로
대릉원·첨성대·동궁·월지
유적과 유명 관광지 대부분
형산강 물줄기 따라 자리잡아
"그런데 왜 미술관 이름이 알천미술관이야?"
전시 티켓을 보다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다.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그리고 반 고흐까지…. 이 이름난 작가들의 전시를 올 여름 내내 경주 곳곳에서 볼 수 있다니! 곧 있을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도시는 다름 아닌 경주 아닌가.
경주에서 규모가 큰 전시나 공연 같은 문화행사가 점점 많아지면서 틈만 나면 자연스레 경주로 향하는 발길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경주 맛집을 꿰고 있는 경주 토박이 지인이 합류하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문화 백수들'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좋게 말하면 콘텐츠 작가, 문화기획자, 한국화를 그리는 예술가지만 실상은 가성비 좋은 볼거리와 먹을 거리를 찾아다니는 우리에게 2025년 하반기 최고의 놀이터는 '경주'가 될 예정이다.
우리가 비록 아시아의 정상들은 아니지만 경주가 이렇게 손님 맞이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 우리도 이번 참에 경주를 구석구석 샅샅이 누려보자며 나름대로 의미심장하게 결의까지 했다.
"'알천'이라고, 강 이름이야. 경주 사람들은 북쪽에 있어서 북천이라고도 하는데…."
경주가 고향인 화가 친구는 커피숍 냅킨을 가져와 뜬금없이 'ㄷ자'를 그린다. 경주 도심을 감싸안듯 흐르고 있는 형산강 물줄기라고 했다. 왼쪽이 서천, 위쪽은 북천(알천), 아래쪽이 남천. 이 ㄷ자를 중심으로 경주 천년의 역사가 흘렀다고 했다.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이 형산강을 중심으로 한 경주의 과거와 미래 이야기다. 한 번쯤 들어봤지만 제대로는 몰랐던 신라 천년의 역사가 이렇게 우리 바로 곁에서 다정하게 '졸졸졸', 때로는 흥미진진하게 '콸콸콸'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을 줄 어찌 알았을까. 그렇게 우리를 유혹한 10가지 이야기 답사여행을 떠나볼 참이다. 일명 '경주 백배 즐기기 형산강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강전설이 깃든 곳 나정. 오릉의 동남쪽, 소나무 숲이 무성한 언덕에 위치한 이 우물은 경주의 시작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다. 2002년부터 4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1천39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경주 나정 석조유물. 나정은 단순한 물줄기의 시작을 넘어 신화와 역사가 교차하는 경주의 출발점이다. 이곳에서 땅은 신화를 낳고 신화는 물길이 돼 도시를 키워냈다.
◆신라의 건국신화, 형산강에서 태어나다
"여기가 바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야. 그때는 여기에 거대한 우물이 있었나 봐."
이야기의 물꼬를 튼 장소는 다름 아닌 나정(蘿井)이다. 신라가 세워지기 전, 이곳은 6명의 촌장이 나눠 다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이곳 우물가에서 흰 말 한 마리가 무릎 꿇고 울고 있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다가가 보니 크게 빛나는 알이 있었다. 우리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박혁거세 탄생설화다. 그 알 속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고, 바로 그 아이가 13살이 되던 기원전 57년 왕의 자리에 올라 나라를 세우니 그 나라가 바로 지금의 경주, '서라벌'이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왜 우물가였을까?"
우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우물인줄도 몰랐을 나정 주변을 맴돌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숱한 세월 동안 박혁거세 탄생신화를 들으면서 매번 신기한 '알'에 주목했을 뿐 단 한 번도 우물에 주목한 적은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어쩐지 궁금해진다. 왜 우물가였을까?
"모든 문명권에서 물은 신성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징적 매개체니까. 알 곁에서 솟아올랐다는 맑은 물도 하늘의 뜻, 그러니까 천명(天命)이 내려오는 통로로 여겼을 거야. 그리스로마신화에서도 강마다 신이 있고 중요한 맹세는 강을 배경으로 하잖아." 문화기획자인 친구는 우리 어머니들이 새벽마다 맑고 정결한 우물물인 '정화수' 떠놓고 빌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러자 경주 토박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재미있는 것은 박혁거세의 아내이자 신라 최초의 왕비였던 알영부인도 알영정이라는 우물에서 태어났다는 설화가 있다는 거야. 여기 동네 어른들마다 여러 버전이 있긴 한데, 우물 아니면 강이야. '알천'에서 솟구친 용마가 알을 하나 물고 나왔는데 그 알 속에서 어여쁜 여자 아이가 태어나서 알영 부인이 됐다는 설도 있고, 닭 형상을 한 계룡(鷄龍)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전설도 있고…."
여기에서 등장하는 '알천'이 바로 '알천미술관'의 그 알천이다. 북천 혹은 알천이라 불리는 물길은 신라 초기 정치와 생활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알천 주변에는 박혁거세의 후손들이 정착했고 신라의 권력과 문화가 뿌리내렸다.

경주 북천(알천)둔치 생활체육공원 인근에 자리한 복거북 가족 조형물. 무병장수와 다산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조각가 김미루가 만들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날 당시 이 일대에 6개의 마을을 이루고 살던 촌장들은 이 알천 상류에 모여 덕있는 인물을 찾아 임금으로 삼고 나라를 세울 것을 의논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지명이 지금도 여전히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주. 마치 대릉원의 능선을 바라보며 최신 팝 음악을 켜놓고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더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공존할 수 있는 곳. 예나 지금이나 그 중심에 형산강이 있다.
◆자연이 설계한 고도(古都), 물이 다스린 신라
"자, 한 번 봐봐. 대릉원, 첨성대, 동궁과 월지, 여기 남쪽 끝의 불국사까지…. 웬만큼 유명한 역사적 장소는 다 이 ㄷ자 주변에 있잖아."
화가 친구는 경주 관광지도를 꺼내들더니 마치 푸른색 실핏줄처럼 뻗어있는 형산강 물줄기를 따라 예의 그 ㄷ자형을 그려 보였다. 그러고 보니 과연 그렇다! 경주에서 주로 다녔던 모든 역사유적지와 유명 관광지들이 대부분 형산강 물줄기를 따라 놓여있었다. 그제야 그저 슥 보고 지나쳤던 지도 속 물줄기가 어떻게 이어지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됐다.
"봐봐, 형산강 여러 물줄기 중에서도 중심 줄기라 할 수 있는 서천, 그러니까 제일 강폭이 넓고 물줄기가 굵은 곳이 서천인데 여기 서천에 신라의 흥망성쇠를 말해주는 다양한 설화와 전설이 죄다 모여있다고 보면 돼."
경주 IC를 통과하자마자 좌우로 보이는,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물줄기가 형산강의 주류인 서천이다. 친구의 손가락은 굵은 서천을 건너 어느새 동쪽을 향해 가고 있다.
"형산강을 부르는 다양한 이름들은 쉽게 말하자면, 월성이 기준점이라고 보면 돼. 도시의 중심이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니까 거기 살던 사람들이 자기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형산강을 불렀던 거야. 월성을 중심으로 서쪽에 있으면 서천, 북쪽에 있으면 북천, 남쪽에 있으면 남천. 월성 주변으로 주거지와 왕릉이 형성돼 있고, 이 남천을 건너야 경주 남산으로 갈 수 있었어. 남천은 남산을 중심으로 한 신라 불교와 왕을 이어주는 다리였던 셈이지. 그리고 이 남천의 지류를 따라 골골이 더 깊숙이 들어가면 불국사나 석굴암 같은 종교시설이 있고…. 이 형산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된 모습이 딱 보이지 않아? 여기서 이렇게, 다시 이 쪽으로 저렇게…."
그의 손가락 끝을 쫓아가다보니 신기하게도 경주 지도가 새롭게 보였다. 형산강의 최북단, 옥산서원이나 양동마을에도 푸른색 실핏줄이 뻗어있는 것이 보였다. 강이 도달하는 곳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있고, 신화가 있고, 마을이 있다. 지금까지 경주는 그저 평범한 내륙도시인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물길을 기반으로 설계된 도시였다는 게 놀라웠다.

형산강의 발원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기도 했으나 환경부가 공인한 형산강의 최장 발원지는 경주시 서면 도리 인내산 동쪽의 616m 서쪽 계곡, 해발 475m 지점이다. 발원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최장 길이인데, 유로연장 63km 지점에 표지석이 들어서 있다.
"경주 도시 발달사 조사 보고서(2013, 경주문화재연구소) 같은 자료를 보면 경주라는 도시에서 형산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딱 보여. 그 옛날에는 강이 물류, 교통, 문화, 방어 같은 도시의 기능적 기반이 될 수밖에 없었거든. 그러니까 신라는 이 형산강과의 조화를 통해서 통치하고 뻗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그 대표적인 예가 월성이다. 월성은 북천과 남천 사이의 고지대에 위치하며 천연 방어와 배수에 유리한 위치를 점했고, 동궁과 월지는 물을 품은 궁궐이라는 철학적 공간을 실현했다. 이런 배치는 단순한 지형 활용을 넘어,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는 도시 계획의 철학을 보여준다.
또 형산강은 내륙 경주를 동해와 연결한 수로이자 교역망의 역할을 했다. 포항으로 이어지는 수운(水運)은 장보고의 해상활동, 외국 사신의 진입, 화랑도의 원정로로도 기능했으며 조선시대까지 소금 유통망으로 연결돼 경주의 대외 창구 역할을 했다.
"그뿐이 아니야. 형산강의 분지 지형은 경주를 순환형 도시로 만들었어. 형산강과 알천, 남천 같은 지류는 도시 내부를 기능별로 나누고 다시 연결하는 구조를 형성했는데, 자세히 보면 왕궁이나 귀족의 주거시설, 사찰이나 서원, 농경지, 방어선이 형산강을 중심으로 해서 계층적으로 배열된 걸 알 수 있어."
끝없이 뻗어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거대한 붓 하나가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도시를 그리는 듯 느껴졌다. 경주라는 도시를 감싸고 있는 '물의 붓' 같은 형산강.
지금도 유유히 강이 흐른다. 흘러감으로써 항상성을 유지하는 강의 형태는 그래서 조금은 역설적이다. 강이 강으로 존재하며 여전히 그곳에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 유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경주는 그런 도시다. 경주가 경주로써 존재하기 위해서는 천년 역사의 변치 않음을 안고 미래로 흘러야 한다. 그 중심에 지금도 여전히 형산강이 있고, 그 강을 따라 우리의 이야기도 흐르고 있다.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경주시>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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