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 가볼만한 폭포 명소

원풍리 수옥폭포. 20m의 절벽을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다. 고려 말 홍건적을 피해 온 공민왕이 이곳에 초가를 지어 행궁으로 삼았다고 한다.
여름 숲은 물속 같다. 숲으로 들어가면, 물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잠긴다. 편안하고, 상쾌하고, 뺨은 건강해진다. 그러다 폭포를 만나면, 어떤 근원에 도달한 것만 같은 커다란 기쁨이 몰래 생긴다. 내연산과 주왕산의 폭포들, 영양의 상계폭포와 하계폭포, 청도 남산의 낙대폭포, 금오산의 대혜폭포가 그랬고, 양산의 홍룡폭포, 비슬산의 용수폭포, 김천의 장전폭포, 기장의 홍연폭포도 좋았다. 좋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어쩔 줄을 모르겠다.
◆ 충북 괴산 원풍리 수옥폭포
새나 넘을 만 한 봉우리 가운데 사람이 넘을 만한 고개가 있다. 새재보다 작다고 소조령(小鳥嶺)이라 한다. 그 고개 아래에 원풍리 마을이 있고, 초입의 갓진 길가 서늘한 바위 속에 두 분 보살님이 앉아 계신다. '원풍리 마애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이다. 마애불 아래로 원풍천이 흐른다. 천을 거슬러 작은 소조령 쪽으로 향하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계곡에 원풍리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다. 마을 안쪽으로 천을 따라 산책로가 다붓하다. 몇 채의 집과 경로당, 작은 규모의 밭들이 있고, 드라마 '다모'와 '여인천하'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안내판이 있다. 커다랗고 아름다운 버드나무를 지나 잠시 후 마을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세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원풍천은 마을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꺾으면서 결심한 듯 폭포가 된다. 20m의 절벽을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다. 고려 말 홍건적을 피해 온 공민왕이 이곳에 초가를 지어 행궁으로 삼았다고 한다. 폭포 아래에 정자가 있다. 숙종 37년인 1711년 연풍현감으로 있던 조유수가 청렴했던 자신의 삼촌 동강 조상우를 기리기 위해 정자를 짓고 '수옥정'이라 했다한다. 그때의 정자는 사라지고, 지금은 1960년에 지역 사람들이 괴산군의 지원을 받아 건립한 팔각정이 자리한다. 공민왕 시절의 폭포는 무엇이라 이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수옥정의 건립과 함께 폭포는 수옥폭포가 되었다. 폭포는 도도하게 뛰어내리고 잠시 파랗게 누웠다가 시린 눈빛으로 콸콸 흐른다. 소 주변의 암반들은 너무나 넓어 가만히 보기만 해도 미끄러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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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대전 방면으로 가다 김천분기점에서 충주방향으로 간다. 문경새재IC로 나가 괴산방향 3번 국도를 탄다. 이화령 터널 지나 신풍교차로에서 소조령 쪽으로 나가 우회전해 조금 가다 보면 왼쪽에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이 자리한다. 조금 더 소조령 쪽으로 가면 수옥정관광지의 주차장이 있고, 원풍천 따라 약 500m가면 수옥폭포가 있다. 수옥폭포 위쪽에는 괴산군이 운영하는 수옥정 물놀이장이 있다. 계곡물을 이용한 야외 수영장으로 어린이에게 인기다. 이용료가 저렴하고 캠핑장도 함께 있어 편리하다.

상오리 장각폭포. 높이 6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물줄기는 시원스럽게 거세다. 그 아래 소는 우물처럼 위험하나 소의 둘레는 둥근 자갈이 훤히 보일 정도로 얕고 투명하다.
◆ 경북 상주 상오리 장각폭포
상오리는 상주의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서쪽으로는 충북 보은과, 동쪽으로는 문경과 접한다. 속리산의 주봉인 천황봉이 상오리에 있고, 마을의 절반 이상이 국립공원이다. 상오1리 표석 맞은편에 너른 솔숲이 자리한다. 솔숲의 내력은 알 수 없으나 소나무들은 수령이 200년에서 300년에 이른다고 한다. 솔숲 맞은편으로 조금 들어가면 상오리의 골짜기 마을 장각동이다. 속리산 천황봉에서 시작된 계류가 이곳에서 절벽을 타고 떨어진다. 장각폭포다. 높이는 6m, 그리 높지는 않지만 물줄기는 시원스럽게 거세다. 그 아래 소는 아주 깊고 우물처럼 위험하나 소의 둘레는 둥근 자갈이 훤히 보일 정도로 얕고 투명하기 그지없다.
폭포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자리한다. 정자는1962년 봄에 지은 '금란정(金蘭亭)'이다. 금란은 '쇠보다 견고하고, 난초보다 향기롭다'는 뜻이다. '역경'에 나오는 말로 두터운 우정을 이른다. 이곳에서 금란의 우의를 다졌던 분들은 1900년대 상오리 위, 아랫마을에 살았던 12분이다. 여기서 영화 '낭만자객'과 사극 '무인시대' '태양인 이제마'가 촬영되었다. 폭포 위에 그물이 쳐져있다. 물가에는 한 아저씨가 양산을 친 테이블에 확성기를 놓고 금란정의 아이들을 지켜보고 계신다. "아들이 자꾸 뛰어내려서요. 밤새도록 지키고 있을 수도 없고. 보기는 안 좋아도 한철이요. 이제 좀 선선해지면 걷어야죠." 수심 깊은 계곡이라 피서철에 한해 시에서 내린 특단의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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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대전방향으로 간다. 김천 분기점에서 45번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타고 선산, 상주 방향으로 가다가 낙동 분기점에서 30번 당진 영덕 고속도로를 탄다. 화서IC에 내려 49번 도로로 속리산 문장대 방향으로 가면 된다. 솔숲과 장각폭포 옆에 주차장이 있다. 폭포에서 더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가면 심산골짝 신선마을에 상오리 칠층석탑이 있다. 보물이다.

성주 홍개동 만귀정 폭포. 계곡의 벼랑위에 한 칸 자그마한 집이 있다. 현판에 '만산일폭루'라 적혀 있는데, 일만 산의 물이 하나의 폭포로 내려온다는 뜻이다.
◆ 경북 성주 가야산 포천계곡 만귀정 폭포
꽃들과 대숲의 천이라는 화죽천(花竹川)을 거슬러 가야산 북쪽 자락의 깊은 골짜기로 오른다. 옛 사람들은 화죽천을 옥계(玉溪)라 했다. 하천 연장은 약 11㎞, 지류를 합하면 약 12㎞ 정도 된다. 그중 화죽리 대실마을에서 신계리 갈곡마을 어귀까지 약 7㎞를 포천(布川)계곡이라 부른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는 이 물길을 거슬러 그 근원에 다다르기까지 아홉 굽이를 설정해 '포천구곡가'를 완성했다. 그는 1792년 성주의 한개마을에서 태어나 대사간, 공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러다 경주부사로 재직 중 부당한 뇌물을 요구하는 암행어사 김세호의 청을 거절하자 앙갚음의 장계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고, 그렇게 59세의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구곡을 따라 이곳으로 온 제자들이 300~400명에 이르렀다 한다.
9곡은 '홍개동(洪開洞)', 큰물이 열리는 골짜기다. 그는 홍개동에 만귀정(晩歸亭)을 짓고 이렇게 썼다. '구곡이라 홍개동이 널따랗게 있으나/ 오랜 세월 이 산천을 아껴서 숨겼네/ 새 정자 자리 정해 이 몸 편히 하니/ 인간세상의 별유천지 아니겠는가.' 계곡의 벼랑위에 한 칸 자그마한 집이 있다. 400년 된 소나무를 벗하며 폭포를 내다보는 자리다. 현판에 '만산일폭루(萬山一瀑樓)'라 적혀 있다. 일만 산의 물이 하나의 폭포로 내려온다는 뜻으로 '우주의 삼라만상이 결국은 하나의 이치로 귀결된다'는 만수일리(萬殊一理)의 철학을 담고 있다. 폭포소리, 속이 시원하다. 옛 사람들은 '창자가 시원하다'는 극강의 표현을 종종했는데 확실히 앓던 속병까지 낫는 기분이다.
여행정보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광주 방향으로 가다 고령 분기점에서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양평 방향으로 간다. 성주IC에서 내려 고령 방향 33번 국도를 타고 가다 수성2교차로에서 우회전, 화죽교 지나자마자 포천계곡 방향으로 좌회전해 계속 올라가면 된다. 만귀정 초입 도롯가에 임시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만귀정까지는 400m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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