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의 동부 변방인 캄차카 반도가 뉴스에 자주 거론된다. 이곳에서 초강력 지진과 쓰나미, 화산 폭발 등 천재지변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는 섬뜩한 내용이다. 최근 규모 8.8 강진이 발생, 일본과 하와이에도 쓰나미 경보와 함께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으며, 이 지진 여파로 7~8개의 화산이 동시에 분화했다. 특히 600년간 잠자던 크라셰닌니코프 화산이 폭발, 화산재 기둥이 6천m까지 치솟으면서 북태평양에 접한 국가들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기도 했다.
한국에서 북동쪽으로 3천500㎞ 떨어진 머나먼 혹한의 땅이지만, 우리에겐 그리 낯설지 않은 곳이다. 캄차카 반도에도 '한민족 디아스포라(Diaspora)'의 슬픈 역사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당시 북한에 진주한 소련은 자국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근로자 3만 명을 모집, 캄차카로 보냈다. 근로자들은 이곳에서 돈을 벌어 몇 년 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꿈을 꿨지만, 6·25전쟁 발발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됐다. 당시 어장이나 벌목공으로 험한 일을 도맡았던 많은 이들은 한겨울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 기아에 시달리다 숨졌지만, 소련 당국은 물론 고국으로부터 외면받았다. 힘겹게 살아남은 이들도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다 생을 마쳤다는 통한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정수웅 감독이 지난 2017년 이들의 비극적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고향이 어디세요'를 개봉해 큰 반향을 얻기도 했다. 조선인 근로자의 후손들이 여전히 삶을 지탱하는 이곳에서 2011년 일본 대지진(규모 9.1)에 버금가는 초강력 지진이 발생했지만, 그나마 인명 피해가 없어 불행 중 다행이다.
윤철희 수석논설위원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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