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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가장 새로운 도구, 가장 오래된 가치

2025-08-28 06:00
정혜진 변호사

정혜진 변호사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저자 초청 특강 기회가 있었다. 학교 예산으로 책을 구입해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저자를 불러 강의를 하면서 진로 탐색도 겸하는 행사였다. 저자 입장에서는 내가 쓴 책을 읽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데, 학생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그런 기회가 있으면 거리가 좀 멀더라도 꼭 시간을 낸다.


이번 특강을 앞두고 담당 선생님이 학생들의 질문지를 미리 보내주셨다. 읽어보니 몇몇 질문의 수준이 놀라웠다. 문제의식이 분명했고, 질문을 끌어내는 도입부도 훌륭했다. 최근 몇 년간 비슷한 주제로 여러 차례 강연을 했지만, 이처럼 수준 높은 질문은 처음이었다. 이 학교 학생들이 유독 수준이 높은가 하는 생각까지 하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반전은 특강이 끝난 뒤에 찾아왔다. 담당 선생님께서 학생들이 쓴 과제를 모아 또 보내주셨는데, 그때 의문이 생겼다. 학생들에게 특강은 '수행평가'의 일환이었고, 과제는 두 가지였다.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을 적고 이유를 설명하는 것, 그리고 특강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책에서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라며 적은 문장 중에, 내 책에 없는 문장이 상당수 있는 게 아닌가. 반면 특강 내용과 관련해서는 내가 하지 않은 말이 기록된 경우는 없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다 몇몇 답변에서 내 책에 없는 비슷한 문장이 반복되는 걸 보고서야 감이 왔다. 혹시…?


내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대중적인 생성형 AI에 두 가지 질문을 넣어보았다. "수행평가로 〇〇〇 책의 저자에게 질문을 해야 해. 질문 추천해줘." "〇〇〇 책에 나오는 좋은 문장을 알려줘.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독후감 써 줘." AI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여러 개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 안에는 내가 쓰지도 않은 문장을 '책 속의 명문장'으로 추천한 결과도 있었고, 내가 감탄했던 수준 높은 질문과 유사한 내용도 있었다. 역시나!


강사인 나도 특강 준비를 하면서 더 나은 강의 자료를 만들기 위해 AI 도움을 받는데, 특강을 듣는 학생들이라고 AI를 이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책을 읽고 떠올린 질문을 AI에 넣어 더 세련된 표현으로 다듬었다면, 훌륭한 활용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괜히 '학생들의 순수한 질문'이라고만 생각해 과하게 감동한 게 문제였던 셈이다. 그러나 책에 없는 문장을 버젓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구절'로 제출한 건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4년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 5천778명을 조사해 올해 2월 발표한 '청소년의 생성형 AI 이용실태'에 따르면, 고등학생 3명 중 2명이 생성형 AI 사용 경험이 있지만, 관련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관련 교육이라는 게 대부분 효율적인 활용법이나 질문 기술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더 본질적인 건 정직이 아닐까. 내가 직접 읽고 생각한 것을 다듬고 발전시키는 도구로 AI를 써야지,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는 데 AI를 쓰는 건 엄격하게 금지되어야 한다. 이 전제가 무너진다면 학교가 굳이 예산을 들여 특강을 할 필요가 없다.


결국 AI 시대 교육의 본질이라는 것도 의외로 새롭지 않다. 세상은 급격히 변하지만, 학교에서 교육해야 할 근본적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장 새로운 교육 도구를 쓰는 시대에도 정직함이라는 가장 오래된 교육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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