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망의 에겐남-테토남 테스트 첫 화면. <푸망 제공>
#1 "에겐남 vs 테토남" "당신은 에겐녀인가요? 테토녀인가요?" 요즘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등 쇼트폼 영상을 넘기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콘텐츠다. 최근 유행하는 이 에겐-테토 테스트는 성격을 성(性) 호르몬에 빗댄 성격 유형 테스트다. 에겐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테토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뜻한다. 대체로 체격이 좋고 듬직한 남성은 '테토남', 조용하고 섬세한 남성은 '에겐남'인 식이다. 비슷하게 외향적이고 호탕한 여성은 '테토녀', 얌전하고 차분한 여성은 '에겐녀'로 판정받는다.
#2 직장인 정모(27)씨는 자신이 '불안형' 인간이라 밝혔다. "제 연애 경험을 비춰보면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요. 어느 날 온라인에 뜨는 애착 유형 검사를 해봤더니 제가 '불안형' 인간이래요. 그래서 '회피형' 유형의 분과는 잘 맞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애착 유형 검사는 가까운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행동 패턴을 유형화한 심리 검사다.

성격 유형 검사 MBTI의 유형별 캐릭터 이미지. <16Personalities 제공>
'자가 진단 콘텐츠' 열풍이 거세다. 과거 혈액형, 별자리별 성격 특징이 유행하던 것처럼, 간단한 정체성 테스트로 자신을 소개하는 문화가 일상이 됐다. 대표적으로 MBTI가 있다. 수십 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바탕으로 성격을 16가지 유형 중 하나로 분류하는 검사다. 최근엔 애착 유형, ADHD 자가 진단부터 에겐-테토 테스트 등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나를 규정해주는 자가 진단 콘텐츠는 특히 젊은 세대의 일상에 깊이 파고들었다.
자가 진단 콘텐츠에 한국인들은 특히 진심이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최근 5년간 세계에서 MBTI를 가장 많이 검색한 국가다. 2~3위인 몽골, 일본보다 검색량이 2배 가량 더 많았다. MBTI가 개발된 미국과 비교하면 20배 많았다. 놀이처럼 제 유형을 확인하고, 일상에서는 소개팅 자리에서조차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경우도 흔하다. 온라인상에는 연예인은 물론 정치인들의 MBTI까지 재미로 추측하는 게시물이 올라온다. "5분 안에 당신이 누군지 알려주겠다"는 콘텐츠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자가 진단 콘텐츠' 유행 관련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성격을 16가지 유형 중 하나로 분류하는 MBTI 검사 등 '자가 진단 콘텐츠'가 한국에서 꾸준히 유행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자기 이해 욕구·불안정한 사회…"안정감 찾는 방식"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특히 젊은 세대는 왜 이런 콘텐츠에 몰입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인간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커진 결과라고 설명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과)는 "자기 이해가 중요해지는 세상이 됐고, 직관적으로 상대를 파악하기보다는 어떤 툴을 바탕으로 타인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자가 진단 콘텐츠 유행은) 성격 유형을 세분화해 타인과 공감하고 어울리기 위한 발판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 자기 이해 욕구가 커진 배경엔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가 존재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액체 시대'라 규정했다. 질서와 존엄, 안정이 해체되고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액체' 같은 유동적인 상태라고 봤다. 심리학자 토마스 레온니치는 저서 '액체 세대의 삶'에서 이 '액체 시대' 개념을 계승했다. 그는 1980년대생부터 2000년대생에 이르기까지를 '액체 세대'라 칭하며, 그들이 '포스트 빈곤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시대 성장한 액체 세대에게 성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존재가 되고 싶다'는 희망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자가 진단 콘텐츠 열풍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최근 MBTI부터 애착 유형, ADHD 자가 진단 검사, 이제는 성격을 성(性) 호르몬에 빗댄 성격 유형 테스트인 에겐-테토 테스트까지 '자가 진단 콘텐츠'가 인기다. <게티이미지뱅크>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사회적으로 믿을 만한 권위와 신뢰 자산이 무너져 나온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회적 기준이 없어 자가 진단 콘텐츠를 찾는다는 것. 그는 "세상을 알 수 없고 미래는 더욱 알 수 없는 상황에 종교, 대학, 기업, 미디어까지 권위를 상실했다. 젊은 세대에겐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줄 거울이 사라진 것과 다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없는 흰 방에 들어가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럴 때 점 하나를 찍으면 비로소 거리와 기준을 알 수 있다"며 "사람들이 자가 진단 테스트에 몰입하는 이유도 같다. 불확실한 세상에 이 테스트로 '작은 점 하나'를 찍듯 나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신의학에서도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고 본다. SNS와 온라인 문화는 짧고 간단한 언어를 요구한다. MBTI와 같은 자가 진단 콘텐츠는 그 공백을 빠르게 채울 수 있는 코드다. 사공정규 동국대 의과대학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오늘날 젊은 세대는 급격히 변화는 사회 환경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더 자주 묻고 있다"며 "정신의학에서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불안을 줄여주는 핵심 요소로 알려져 있다. 젊은 세대가 자가 진단 콘텐츠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불안을 다루고 안정감을 찾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MBTI의 몇 가지 성격 유형. 맨 앞자리에 오는 E는 외향형, I는 내향형, 세 번째 자리에 오는 T는 사고형, F는 감정형을 뜻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과몰입은 금물…깊은 이해 원한다면 전문가 상담 활용
하지만 이 같은 열풍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자가 진단 콘텐츠로 타인과의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말한다. 직장인 이모(여·31)씨는 "예전엔 이해 못했던 친구들의 행동이 MBTI를 알게 되며 설명이 됐다"며 "'이런 성격 유형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니 불필요한 오해가 줄었다"고 밝혔다. 대학생 조모(22)씨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대화 주제를 찾기 어려웠는데, MBTI 이야기를 꺼내니 금방 분위기가 풀렸다"며 "농담처럼 시작했지만 상대방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돼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채널 캡처. 전문가들은 '자가 진단 콘텐츠' 과몰입의 위험성에 대해 당부한다. <유튜브 캡처>
그럼에도 유의해야 할 점은 있다. 과몰입은 금물이다. 온라인상에는 "나는 (MBTI) T(사고형)라서 F(감정형)랑은 안 맞다" "이 유형이랑은 '진짜' 친구가 될 수 없다" 식의 관계를 단정짓는 반응이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놀이로서 가볍게 즐겨야 한다고 당부한다. 사공정규 교수는 "자가 진단 콘텐츠는 자기 이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전부가 될 수는 없다"며 "과몰입하면 자기 인식을 왜곡하고 인간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전했다.
일반인이 흔히 접하는 검사 중에는 공신력 없는 테스트도 많기 때문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 사공 교수는 "온라인에서 접하는 검사들은 정신의학적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이를 진단이나 처방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가벼운 이야기 소재로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깊은 자기 이해에는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전문가의 상담이나 검증된 검사 도구를 함께 활용할 때 더욱 안전하다"고 당부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