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자식이 넷이나 되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둘째 딸 이야기다. 이 아이는 감성적이고 지적 호기심은 왕성한데 운동신경이 바닥이었다. 특히 달리기를 못했다. 달렸다 하면 꼴찌였다. 타고난 성실함으로 온 힘을 다해 달리는데도 6명이 달리면 6등이고 8명이 달리면 8등이었다.
운동회 날이 되면 우리 집은 초비상이었다. 달리기 없는 운동회는 없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우선 출발 동작부터 늦었다. 선 위에 아이들을 주르르 세워놓고 선생님이 뒤에서 총을 탕 쏘면 둘째는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쪽 저쪽을 살펴보다가 총을 쏘는 선생님까지 돌아다보았다. 결국 다른 아이들이 저만치 앞선 후에야 부랴부랴 출발했다.
한 번은 용캐도 제때 출발하는가 싶더니 달리는 도중 신발이 벗겨지고 말았다. 둘째는 되돌아가서 튕겨나간 신발을 애써 주워 신고 난 후에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달리지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반드시 신을 신고 달려야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날은 일행과 너무 많이 떨어져서 뒷팀에 묻어서 골인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다음 해에는 둘째의 운동회에 갈 수가 없게 되었다. 학교가 다른 동생한테 가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누나와 달리 펄펄 날았다. 6명이 달려도 1등을 하고 8명이 달려도 1등을 했다.
의기양양한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둘째 또한 기분이 몹시 들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오늘 저도 운동회에서 '참 잘 달렸다'는 것이었다. 온 식구가 둘째의 입을 쳐다보았다.
"몇 등을 했기에?"
"그야 당연히 꼴찌였지요."
"잘 했다며?"
둘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짓까지 보태며 대답했다.
"이번에는 7등 뒤에 딱 붙어서 꼴찌했다니까요. 바짝 붙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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