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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질서 없음

2025-10-23 18:46
지난해 가자지구 중심부에 위치한 누세이라트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있은 후 사람들이 잔해 속에서 걷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가자지구 중심부에 위치한 누세이라트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있은 후 사람들이 잔해 속에서 걷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무질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며 침략을 강행했다. 이스라엘은 중동 여러 국가와 분쟁을 이어간다. 경제적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에너지 가격 폭등, 인플레이션, 탈세계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혼란, 양극화…. 이처럼 상식대로 움직이지 않는 아수라장의 뿌리는 어디일까?


세계적인 석학 헬렌 톰슨의 '질서 없음'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무질서'의 기원을 파헤친다. 이 책은 팬데믹 이전부터 이어진 정치적 격동과 현재의 위기가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연결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지정학(에너지), 세계 경제(금융), 민주정(민주정치), 현대 세계를 움직이는 이 세 가지 핵심 축의 역사를 추적하고, 이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며 현재의 무질서를 만들어냈는지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에너지·금융·민주주의 시스템은 인류에 번영을 안겨줬으나 오늘날 풍요 이상의 혼돈을 부른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1부 '지정학'에서는 석탄에서 석유로 핵심 에너지원이 바뀌면서 미국이 어떻게 패권국으로 떠올랐고, 반대로 자원이 부족했던 유럽 열강들이 어떻게 중동을 각축장으로 만들었는지 추적한다. 저자는 수에즈 위기 후 독일이 소련(러시아)의 에너지에 의존하게 된 것이 NATO를 구조적으로 분열시키는 '단층선'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오랜 균열이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폭발했다고 분석한다.


2부 '경제'에서는 1970년대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와 오일 쇼크가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보여준다. 이 사건은 달러 중심의 불안정한 금융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러한 달러의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통화공동체 '유로'가 나왔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국경 없는 자본 이동을 촉진하며 '메이드 인 차이나' 시대를 열었지만, 그 안에 내재된 모순은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야기했다. 저자는 이 위기 이후 중국의 경제전략 수정과 미국의 견제가 맞물리며 현재의 미중 관세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질서 없음/헬렌 톰슨 지음/윌북/480쪽/2만9천800원

질서 없음/헬렌 톰슨 지음/윌북/480쪽/2만9천800원

3부 '민주정치'에서는 이 에너지와 금융의 격변이 어떻게 국가의 과세능력을 약화시키고 '경제적 국가공동체주의'를 붕괴시켰는지 파헤친다. 국가가 더는 시민의 경제적 삶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불만이 쌓이며 엘리트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고, 그 결과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 같은 포퓰리즘과 극단세력이 부상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저자는 고대사학자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Anacyclosis)을 빌려 지적한다. 정치 체제가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며 순환하는 것처럼, 오늘날의 국제정세 역시 지정학(에너지 패권), 금융(통화 패권), 민주정(국제정치 패권)이 일종의 '피드백 루프'를 형성하여 격동을 증폭시켰다고 꼬집는다.


이 책에 대해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은 "현재의 위기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드문 책"이라며 "지정학, 금융, 민주주의라는 세 가닥의 끈이 하나의 밧줄로 꼬아지고 또 흩어지는 과정을 통해, 지구적 무질서의 시작과 현재와 미래의 향방을 짚어보는 데에 하나의 분명한 이정표를 심어준다"고 평했다.


저자인 헬렌 톰슨은 케임브리지대 정치경제학 교수다. 단기적인 현상 너머 수십 년에 걸친 구조적 흐름을 읽어내는 데 탁월한 역사가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뉴 스테이츠먼 선정 '영향력 있는 정치인사 50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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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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