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훈 맥수면이비인후과 원장
주말에 지인들과 오랜만에 골프 모임을 가졌다. 30년 이상 된 친구들은 눈빛만 스쳐도 그날의 컨디션을 짐작할 수 있다. 날씨가 유달리 좋은 만큼 공이 잘 맞지 않는 핑계는 자연스레 '몸 때문'으로 모아진다. 오십견, 허리 디스크가 도져 제대로 된 스윙이 어렵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그런데 유독 한 명은 밝은 얼굴로 라운딩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고 필자는 아픈 데가 없는지 물어보았다. 뜻밖에도 그는 "나라고 아픈 데가 왜 없겠나. 다만 건강했던 과거는 추억이고, 오지 않은 내일은 미래이니 지금 이 순간 누릴 수 있는 건강에 감사하며 즐기고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참으로 당연한 진리지만 나를 포함해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분들까지 이런 평범한 지혜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많은 부분도 이와 비슷하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거나, 예전 같지 않다며 체념하는 대신 지금 상태에서 지혜롭게 대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노마지지(老馬之智)', 늙은 말이 길을 잘 찾듯이 말이다.
특히 중·장년층에서 흔히 나타나는 난청과 이명이 그렇다. 중추 신경에 속하는 청신경은 나이가 들수록 기능이 점차 저하되며, 고주파 난청부터 시작해서 대화 영역에 속하는 저주파 범위까지 광범위하게 악화된다. 이 과정에서 귀가 잘 들릴 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내부 잡음이 크게 들리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명이다. 마치 귀를 막았을 때 갑자기 잡소리가 들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낮에는 소음에 묻혀 잘 느끼지 못하다가도, 조용한 밤이 되면 유난히 크게 들려 숙면을 방해하기도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혈액순환제나 신경계통의 약물 치료가 거의 전부였지만, 다행히도 의학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나이아신 주사나 고압 산소 치료처럼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증상을 50% 이상 호전시켜 주는 치료법들이 보편화되었다. 적극적으로 재활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호전되기도 한다.
문제는 많은 환자들이 이를 '나이 탓, '만성적인 질환'으로만 여기고, 참고 넘기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참기만 해서는 삶의 질이 떨어지고 건강한 일상을 지키기 어렵다. 최신 치료라고 완벽하지만은 않다. 시간을 두고 득실을 따져보아야 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다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건강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오직 현재의 문제다. 오늘 당장 귀 기울이고 실천하는 작은 관리가 내일의 생활을 바꾸는 힘이 된다. 그것이 바로 '노마지지'의 지혜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
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