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성 동부지역본부장
중국발(發) 과잉공급 속에 트럼프 관세폭탄까지 맞은 철강도시 포항의 경제인들이 요즘 만나면 가장 먼저 꺼내는 화제가 있다. 바로 산업용 전기요금 문제다.2022년 1분기 ㎾h당 105.5원이던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올해 7월 194.1원으로 껑충 뛰었다. 물론 계절과 시간대별로 요금 차이는 있지만, 2021년 이후 누적된 인상으로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이나 중국보다 평균 30~50% 이상 높다. 이처럼 높은 전기요금은 철강업계를 비롯한 국내 주력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포항상공회의소가 '철강산업 전용 요금제 도입'을 요구할 정도로 그 심각성이 크다.
원전이 밀집한 경북은 전국 발전량의 16%를 책임지는 지역이다. 그러나 지역 주민과 기업들이 내는 전기요금은 수도권과 다를 바 없다. 막대한 환경 부담과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면서도 정작 전력 소비의 혜택은 수도권이 독식하는 구조다. 실제로 수도권의 전력 자립률은 서울 11.6%, 경기 62.1%에 불과한 반면, 경북은 무려 228.1%에 달한다.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이 혜택은 고사하고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현실은 불편한 진실이자 반드시 개선돼야 할 구조적 문제다.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전기요금 지역 차등제'가 떠오르고 있다. 지역별 전력 자급률과 송전 비용 등을 반영해 요금을 차등화함으로써 에너지 형평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자는 취지다. 이는 느닷없는 주장이 아니다. 미국·독일·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이미 지역별 차등제를 운영 중이다.에너지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지에 합당한 보상과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미세먼지, 온배수, 송전탑 등 각종 환경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수도권과 똑같은 단가로 전기를 사용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곳의 요금이 싸야 한다"며 당위성을 인정하며 필요성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전력 생산 지역에 일정한 요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거나, 지역발전기금 확대와 같은 실질적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다.그럼에도 정부는 차등요금제 시행을 내년 이후로 미루려 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14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수급 여건, 송전 거리, 비용 등을 반영한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 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 시행 시점을 '2026년 이후'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도입 방안 마련' 단계에 불과해 추가 지연 가능성이 크다.
왜 2026년 이후일까. 내년 6월 3일은 이재명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을 띠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정권 입장에서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서울·경기 등 수도권 주민들에게 불리하게 비칠 수 있는 제도를 서둘러 시행하기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전기요금 지역 차등제'는 정부가 수도권의 눈치를 보며 미뤄야 할 정책이 아니다. 이는 지역 균형발전의 핵심이자 에너지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경북은 전국 발전량의 6분의 1을 책임지며 국가 전력망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전기료 지역 차등제 도입은 이런 구조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합리적 전력요금 체계를 통해 '생산지 우대 원칙'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균형발전이자 에너지 정의의 실현이다.
마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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