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마음을 얻은 신라 금관', '시진핑의 입맛을 사로잡은 황남빵'
경주 APEC이 끝났다. 국제행사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단지 회의장과 사진이 아니다. 고대 유산과 지역 브랜드가 세계인의 눈과 입을 사로잡았고, 경주는 회의의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에 섰다.
신라 금관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쥐어준 순간, 화제의 중심은 오히려 한국보다 글로벌이었다. 문화적 상징을 외교 선물로 활용한 방식에 대한 설왕설래는 이어졌지만, 그 파장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트럼프가 신라 금관을 쓰고 춤추는 AI 합성 영상이 SNS를 뒤덮었고, '왕은 없다'(No Kings)를 외치는 미국 내 시위와 맞물리며 새로운 밈으로 번졌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논란이 아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장면은 따로 있다. 천년 왕조를 이어온 신라의 유산이 이제 세계 한복판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 변방으로 여겨졌던 한반도 고대 왕국의 금관이 글로벌 미디어를 타고 세계 정치 풍자 속 상징물이 된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그 덕분일까.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신라 금관 특별전'에는 연일 관람객이 몰려들며 오픈런과 조기마감이 반복되고 있다.
황남빵 열풍도 그 연장선에 있다. 달콤하고 소박한 지역 명물이 세계 정상의 입을 거치며 SNS를 타고 글로벌 소비자들의 장바구니로 옮겨갔다.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을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APEC 기간 동안 황남빵 매장 앞에는 중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국내외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현장에선 "중국인 관광객은 시진핑 주석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국이 보여준 문화외교의 성과와 개최지 경주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유럽의 로마나 피렌체와 같이 아시아엔 경주가 있다"며 "세계유산 도시에서 열린 회의는 경제뿐 아니라 문화와 가치의 교류를 상징한다. 한국이 '하이테크의 나라'에서 '하모니의 나라'로 이미지를 확장했다"고 평가했다.
진짜 과제는 지금부터다. 일회성 홍보를 넘어 지속 가능한 모델을 세워야 하고, 신라의 유산을 한국 문화의 깊이와 품격을 담는 브랜드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과 지역주민이 이 변화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경주의 시간은 이제 막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천년의 역사에 숨을 다시 불어넣은 지금, 그 다음 장을 어떻게 써내려갈지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서민지
디지털콘텐츠팀 서민지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