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정원이 배운 실험, 백두대간의 숲이 답하다
세종의 시민참여형 생태모델과 봉화의 생명보전 전략이 만나는 지점
연구·교육·문화가 융합된 새로운 국가 수목원의 비전을 묻다
국립세종수목원 정문 앞에서 시민들이 가을 정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황준오기자
국립세종수목원 내 궁궐정원 전경.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과 정원의 조화가 돋보인다. 황준오기자
국립세종수목원 분재원에 전시된 분재 작품들. 자연의 축소미학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황준오기자
국립세종수목원은 지난 2020년 개원과 함께 도심 속 수목원의 시대를 열었다. 세종정부청사와 인접한 65㏊ 부지에 자리한 이 수목원은 시민이 걸어서 찾을 수 있는 '생활권 정원(生活圈庭園)'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사계절전시온실, 한국전통정원, 분재원, 야간정원 프로그램이 어우러진 세종수목원은 '식물의 과학'을 '삶의 문화'로 번역한 공간이다.
반려식물 상담실, 미니정원 체험, 야간개장 '우리 함께夜(야)' 같은 프로그램은 도심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새로운 방식을 열었다. 식물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도시민의 감정과 대화를 나누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 변화는 숫자보다 선명하다. 개원 5년 만에 누적 관람객 400만명을 돌파하며, 연간 100만명 가까운 시민이 이곳을 찾고 있다. 유아와 청소년, 가족 단위 방문객이 절반을 차지하며, 과거 전문가의 영역이던 수목원이 일상적 여가공간으로 변모했다. 세종수목원은 '정원'을 행정도시의 풍경이 아닌 시민의 생활 언어로 재정의했고, 그 결과 세종은 이제 '정원의 수도'로 불린다.
반면,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생태의 심장부이자, 기후위기 시대의 생명금고다. 지난 2018년 개원한 이곳은 5천179ha 규모로 서울 여의도의 180배에 달한다. 아시아 최대의 산림생물자원 보전지로, 자생식물 4천여 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멸종위기종 복원 연구의 거점으로 자리했다.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세계 유일의 야생식물 종자 영구저장시설로, 200만 점의 종자가 영하 20도의 저장고에서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호랑이숲에선 백두산호랑이가 살아 숨 쉬며,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윤리의 경계를 일깨운다.
두 수목원의 철학은 처음부터 달랐다. 세종은 '도시민의 생태복지와 정원문화 확산'을, 백두대간은 '국가 생물다양성 보전과 연구'를 사명으로 한다. 예산 구조 또한 상이하다. 세종은 시민 체험과 문화 프로그램, 온실 운영에 집중 투입되고, 백두대간은 광대한 보호구역 관리와 시드볼트 운영, 연구 인프라 유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나 단순한 방문객 수로 두 기관의 성과를 비교할 수는 없다. 세종이 시민의 일상에 뿌리를 내렸다면, 백두대간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종자를 심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이 도시민의 삶을 녹색으로 채웠다면, 백두대간은 여전히 '전문가의 숲'에 머물러 있다. 세종이 감성형 프로그램으로 2회 연속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반면, 백두대간은 접근성과 콘텐츠의 한계로 일반 방문객 유입이 낮다. 성인 비율이 90%를 넘고 청소년층 비중은 미미하다. 하지만 수목원은 최근 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세계 호랑이의 날' 가든하이킹, '시드볼트의 날' 특별전, 구상나무숲 보전 전시 등은 백두대간이 시민 감성을 향해 문을 여는 신호탄이다.
백두대간의 심장, 글로벌 시드볼트 전경. 광활한 백두대간의 산세 속에 생명종자의 저장고가 자리하고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제공>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상징인 호랑이 트램이 수목원 숲길을 달리고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제공>
이제 필요한 것은 '접속(接續)'이다. 세종의 개방성과 백두대간의 깊이가 연결될 때, 비로소 국립수목원의 미래가 완성된다.
첫째, 언어의 전환이 필요하다. 백두대간의 연구성과 종자 200만 점, 자생식물 4천 종, 복원종 다수는 과학의 언어로만 남아선 안 된다.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전시와 교육으로 해석될 때, 그것은 비로소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된다. 세종이 도시민을 위한 체험 플랫폼이라면, 백두대간은 그 근거를 제공하는 연구의 뿌리다.
둘째, 미래세대 교육의 연결이다. 세종의 반려식물 스튜디오와 폴리네이터 정원은 아이들에게 생명의 감각을 심어주고, 백두대간의 호랑이숲과 시드볼트는 그들에게 생태의 책임을 가르친다. 여름방학에 세종의 아이들이 봉화의 숲에서 종자를 만지고, 겨울에는 백두대간의 연구가 세종의 교실로 옮겨오는 상호순환형 생태교육 모델. 그것이야말로 'K-수목원형 미래교육'의 실체다.
셋째, 통합 브랜드 전략이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봉화(백두대간), 세종, 평창(한국자생식물원), 담양(정원문화원)을 잇는 4대 국립수목원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있다. 각 기관은 자생식물 연구, 정원문화 산업, 생태보전 등 역할은 다르지만 하나의 브랜드로 묶여 '국가 식물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세종은 정원문화 허브, 백두대간은 생태보전 거점, 평창은 희귀식물 연구지, 담양은 K-가든 세계화의 전진기지로 기능한다. 이는 단순한 기관 협력이 아니라,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전략으로 확장되는 비전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 상생도 중요한 축이다. 백두대간수목원은 봉화군과 협력해 자생식물 계약재배를 진행하고, 지역 농가의 수익 구조를 지원한다. SNS 인플루언서 초청 팸투어, 지역 축제 연계 홍보, 무료개방 행사는 지역경제와 관광을 잇는 연결고리다. 반면 세종은 도시민 중심의 문화·교육 생태계를 구축하며, 플리마켓과 지역 예술가 협업으로 정원산업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두 수목원이 함께하는 협력모델은 '지역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경제'의 단초다.
마지막으로, '국립수목원 네트워크'의 비전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 향한다. 한국형 정원문화(K-Garden)의 세계화를 담양 정원문화원이 이끌고, 평창의 자생식물원은 한반도 고산식물의 국제적 연구거점으로 발전한다. 세종의 도시형 모델과 백두대간의 산림형 모델이 해외 박람회, 학술교류, 생물다양성 국제협약의 협력무대로 확장될 때, 한국 수목원은 더 이상 '국내 기관'이 아니라 '지구적 생태 플랫폼'으로 진화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논의는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국립수목원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세종은 시민의 곁에서 정원의 가치를, 백두대간은 숲의 중심에서 생명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하나는 도시를, 다른 하나는 산을 지탱하며, 두 수목원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존재한다. 연구와 교육, 문화와 생태가 하나의 순환 구조로 이어질 때, 국립수목원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우리 사회가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국가 생태의 거울'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두 수목원의 여정은 한국 사회가 자연과 문화를 대하는 태도의 성숙을 의미한다. 세종의 도심 속 정원이 일상 속 생태 감수성을 키우는 실험실이라면, 백두대간의 숲은 그 감수성을 지구적 책임으로 확장하는 학교다. 두 수목원이 걸어온 길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그 끝은 하나로 향한다. 인류의 생명 자산을 지키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일 — 그것이 바로 국립수목원이 존재해야 할 이유이자, 우리가 그 길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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