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구 대구 남구청장
대구 남구의 한복판, 한 세기 전 이곳엔 군용 비행장이 있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세운 '동명비행장'은 광복 후 미군 캠프워커로 바뀌었고, 이곳은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닫힌 땅이었다. 아이들은 철조망 너머를 바라보며 "저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상상만 했다. 그 담장이 걷히기까지 104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 땅 위에 시민의 집, '대구도서관'이 세워졌다. 군용 헬기장이 사라지고, 책과 사람의 향기가 깃든 공간이 들어섰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도시의 세포가 되살아났다'는 생각을 했다. 닫혀 있던 땅이 열리고, 잊힌 기억이 희망으로 바뀌는 장면이었다.
담장이 열린 문명, 도시의 온도를 되찾다. 이 변화는 세계 여러 도시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뉴욕의 '거버너스 아일랜드(Governors Island)'는 오랜 세월 군사기지로 묶여 있던 섬이었다. 2005년 그 섬이 시민에게 돌아오자, 공연과 예술, 그리고 배움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사람들은 그 변화를 "담장이 열린 문명"이라 불렀다. 도시의 진정한 회복은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벽을 허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대구 남구의 변화도 이와 닮아있다. 대구도서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책을 쌓아둔 공간이 아니라, 닫혀 있던 마음을 여는 장소다. 어린이는 이곳에서 세상과 처음 만나는 법을 배우고, 청년은 방향을 찾으며, 어르신은 경험을 나누고 기억을 전한다. 그 불빛은 지식의 등불이자 공동체의 심장이다.
도시도 사람처럼 상처를 가진다. 한때 '출입이 제한된 땅'이라 불리던 곳이 시민의 쉼터로 바뀌는 과정에는 오랜 인내와 협력이 있었다. 남구의 변화 또한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엔 삶을 바꾸는 힘이 있다. 행정은 제도를 만들지만, 공동체는 사람의 손으로 세워지기 때문이다.
책은 도시를 낫게 하고, 나눔은 사회를 치유한다. 복지와 문화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 권의 책이 마음을 바꾸고, 그 마음이 세상을 바꾼다. 대구도서관의 불빛은 단지 전등의 밝음이 아니라, '닫힌 세상을 여는 약속의 빛'이다. 이제 이 공간은 더 이상 과거의 경계가 아니라, 미래의 출발점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어르신이 손자와 함께 걷는 그 풍경이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도시는 숨 쉬고, 시민은 웃는다. 그 웃음이 오래도록 꺼지지 않기를, 그 불빛이 남구의 밤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조재구<대구 남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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