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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가을을 희롱하는 국화 핀 뜰 안의 고양이

2025-11-20 14:04

조선시대 화가들의 인증샷 같은 반려묘 그림

정선, 추일한묘, 비단에 채색, 31.0×18.8cm, 간송미술관 소장

정선, '추일한묘', 비단에 채색, 31.0×18.8cm, 간송미술관 소장

황금빛 몸에 옥색 눈동자를 가진 그의 이름은 '코코'다. 그가 우리 집 거실에 들어선 순간, 소리 없이 물건 사이를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의자 위에서 책상을 거쳐 다시 책상 밑으로 숨는다. 탐색은 끝나지 않았다. 서재에서 거실을 거쳐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을 살핀다. 눈 깜짝할 사이 몸을 감춘다. 코코는 남동생이 기르는 '반려묘'이다. 아버지의 아흔셋 생일날, 손주 대신 고양이를 안고 왔다. 이 무슨 해괴한 풍경인가. 동생의 금지옥엽 코코는 우리의 '핫 뉴스'가 됐다.


◆정선, 가을날의 고양이


강아지에 비해서 고양이는 먼저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신뢰가 쌓여야 마음을 내어준다. 선택받기보다 사람을 선택한다. SNS에는 반려동물의 인증샷을 올려 애증을 과시한다. 카메라가 없던 조선시대에는 화가들이 그림으로 고양이를 담았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뒤뜰에 노니는 고양이를 탐스럽게 포착했다. '추일한묘(秋日閑猫)'는 반려묘의 초상이 아닐까 싶다.


정선은 진경시대를 풍미한 산수화로 명성이 높았지만 꽃과 풀벌레, 털 짐승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추일한묘'는 만년작인 '화훼영모화첩(花卉翎毛畵帖)'에 수록되어 있다. 8폭으로 구성된 화첩에는 후원에서 심고 가꾼 채소나 꽃, 풀벌레, 고양이, 닭 등이 어우러져 있다. 화려한 채색과 구도감각이 신선하고, 생생한 현장감이 탁월하다.


평온한 가을날, 검은 고양이가 국화 아래 앉았다. 햇볕은 청량하다. 일곱 송이 보랏빛 국화가 소담스럽다. 꽃향기에 꿀벌이 날아든다. 어디선가 난데없이 방아깨비가 착지한다. 흑색 털이 아름다운 고양이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방아깨비다.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가 반짝인다. 방아깨비는 고양이의 시선을 받자 한껏 방어하는 자세를 취한다.


고양이 옆으로 강아지풀이 무심하게 뻗어 있다. 국화 아래에는 잡풀들이 마당의 한가로움에 추임새를 더한다. 국화잎은 몰골법으로 단숨에 그렸다. 꽃과 고양이의 수염, 발톱, 방아깨비는 세심하게 선필로 표현하였다. 식물과 미물이 상생하는 후원의 한때다.


변상벽, 묘작도, 비단에 엷은 색, 93.9cm×4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변상벽, '묘작도', 비단에 엷은 색, 93.9cm×4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변상벽의 페르소나, 고양이 두 마리


예로부터 고양이는 장수를 상징했다. 생일 축하 선물로 고양이 그림이 애용됐다. 고양이 '묘(猫)' 자는 한자로 70 노인의 뜻을 가진 '모(耄)' 자가 중국어 '마오'로 불린 탓에 고양이는 '70 노인'을 의미한다.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고양이 그림은 생일 선물로 애용됐다. 70세를 맞이한 어느 선비의 생일 선물로 그린 그림이 있다.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 1730~1775)의 '묘작도(猫雀圖)'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나무 아래 위에서 정답게 마주보는 광경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변상벽은 최고의 초상화가로 어진을 비롯해 100여점의 초상화를 남긴 만큼 '국수(國手)'로 통했다. 초상화 못지않게 영모화도 빼어났다. 일명 '변고양이'와 '변닭'으로 불릴 만큼 고양이와 닭 묘사에 출중하였다.


'묘작도'는 아들 여섯을 둔 노부부의 가족사를 담은 그림이다. 화가는 아들을 참새로, 노부부는 한 쌍의 고양이로 의인화하였다. 참새는 참새 '작(雀)' 자가 벼슬 '작(爵)' 자와 발음이 같아서 아들 여섯 모두 높은 벼슬에 진출하길 바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화가의 기발한 통찰이 돋보인다.


앙증맞은 잡풀들이 꽃처럼 피었다. 수컷 고양이가 우아한 자태로 나무를 타고 있는 암컷 고양이를 올려다본다. 검은 털에 흰색 목덜미가 대비를 이루며 선명하다. 턱을 올린 모습에 코와 수염, 한쪽의 눈이 암컷을 향한다. 꼬리는 사랑의 표시로 발 위에 올렸다. 수컷의 자태가 수려하다. 장난기 가득한 암컷은 나무를 타며 귀여운 포즈로 수컷을 내려다본다. 둘만의 애정이 흐른다. 나뭇가지에는 여섯 마리의 참새가 화음을 맞춘다. '생일송'이다. 생일 선물을 받은 노부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변상벽, 국정추묘, 종이에 채색, 29.5×22.6cm, 간송미술관 소장

변상벽, '국정추묘', 종이에 채색, 29.5×22.6cm, 간송미술관 소장

고양이는 꽃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변상벽의 또 다른 작품 '국정추묘(菊庭秋猫)'는 '국화 핀 뜰 안의 가을 고양이'를 그렸다. '묘작도'에 등장하는 수컷 고양이와 암컷 고양이가 포즈를 잡은 두 점의 독립된 작품이다. 한 작품에는 활짝 핀 국화 아래 검은 고양이가 뛰어오를 태세로 한껏 움츠리고 있다. 국화 향기에 이끌려 벌이 주변을 맴돈다. 벌을 쏘아보는 고양이의 눈동자가 하늘을 향한다. 주변 배경에 비해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고양이가 금방이라도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또 다른 작품은 얼룩 고양이가 검은 고양이를 쳐다보는 자세다. 붉은 패랭이꽃이 고양이를 등지고 피어 있다. 웅크린 고양이 자세가 빼어나다. 갈색 바탕에 검은 털이 세밀하다. 물방울처럼 검은 점이 찍혀 있어 무늬가 멋스럽다. 귀를 세워 먹잇감을 찾는 중이다. 입 주위의 수염을 한 가닥씩 힘차게 그렸다. 두 작품에는 변상벽의 호 '화재' 인장이 찍혀 있고, 얼룩 고양이를 그린 작품에는 '화재가 그리다(和齋筆)'라고 적혀 있다. 고양이의 앙증맞은 표정을 섬세하게 살렸다.


변상벽, 패랭이꽃 아래 고양이, 종이에 채색, 29.5×22.6cm, 간송미술관 소장

변상벽, '패랭이꽃 아래 고양이', 종이에 채색, 29.5×22.6cm,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의 고양이와 나비


'생일 선물용' 고양이 작품으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도 빼놓을 수 없다. 황금색의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하는 그림이다. 김홍도는 화원화가로 공직에 있으면서 수많은 작품을 그렸다. '황묘농접도'는 연풍 현감 재임 기간(1792~1794) 중 40대 말에 그렸다. 색채가 밝고 선명하여 젊은 기운이 가득하다. 생일을 맞은 선비가 작품처럼 건강하게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이 오롯하다.


붉은 패랭이꽃이 하늘을 향해 피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바위와 꽃, 나비, 고양이 등은 깊은 의미로 채색되어 있다. 여름에 피는 패랭이꽃의 꽃말은 '청춘'이다. 바위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장수를 뜻한다. 나비는 나비 '접(蝶)' 자가 80 노인의 '질(耋)' 자와 중국어 '디에' 발음과 같아서 나비는 '80 노인'을 일컫는다. 고양이가 나비를 올려다보는 것은 70세를 맞아 80세가 넘도록 청춘을 유지하며 장수하라는 뜻이다.


김홍도, 황묘농접도, 종이에 채색, 30.4×46.4cm,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황묘농접도', 종이에 채색, 30.4×46.4cm, 간송미술관 소장

보라색 제비꽃이 앞쪽에 피었다. 잡풀들이 초록 융단을 깔았다. 돌과 바위가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다. 고양이의 놀이터로 안성맞춤이다. 싱싱한 패랭이꽃이 젊음을 과시한다. 하늘에서는 검은 바탕에 노란색 무늬의 나비가 고양이쪽으로 하강한다. 제비꽃을 바라보던 고양이가 나비의 날갯짓에 놀라서 고개를 치켜 올렸다. 안고 싶을 만큼 폭신한 황금빛 털이 반들거린다. 고양이의 하얀 턱선이 날렵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수박씨 모양의 눈동자로 나비의 행동을 주시한다. 김홍도는 화폭에 "벼슬은 현감이고 단원이라 자호(自號)하며 다른 한 가지 호는 취화사(醉畵士)이다"라고 적고, '홍도(弘道)'라는 인장 아래 '사능(士能)'이라는 호를 찍었다.


◆동생의 '손주 대신 반려묘'


동생은 건강하게 생일상을 받은 아버지에게 고양이 그림 대신 실물을 안겨주었다. 비록 아버지가 학수고대한 손주가 아닌 고양이여서 가슴 아프지만 집사가 된 동생은 고양이를 안고 눈을 맞춘다.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던 동생이 많이 웃고 여유로워진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누군가를 보살핀다는 것은 자신을 챙기고 보듬는 일이다. 코코가 오래도록 동생을 지켜주는 반려묘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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