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 모래 위에서 시작된 전재민들의 정착
전쟁 후 국가 성장의 압축판 보여줘
PMZ 평화예술센터를 중심으로 평화와 체험으로 마을 활성화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마을은 1950년대 정부 주도로 전쟁으로 재난을 입은 전재민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당시 주택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김현목 기자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마을은 1950년대 정부 주도로 전쟁으로 재난을 입은 전재민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당시 주택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주변에는 새롭게 주택을 건설, 대조를 이루고 있다. 김현목 기자
6·25 전쟁 후 대구는 수많은 피란민들이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 움막을 짓고 자연스럽게 마을을 형성했다.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마을은 정부 주도로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정부 주도로 조성됐지만 당시 상황은 다른 피란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래사장→마을로
하빈면 봉촌리 마을은 1958년 정부 정책에 따라 6·25 전쟁 전재민(戰災民) 정착지로 조성됐다. 입주가 시작되면서 초창기 99가구(400여명)이 둥지를 텄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조성한 마을이지만 강변에 위치해 허허벌판에 가까웠다. 논도 거의 없어 농사 여건도 매우 열악했다. 장비가 없던 시절 직접 물을 퍼 올려 논을 만들었지만 모를 심어도 금세 말라버리는 일이 다반사일 만큼 척박한 환경이었다.
봉촌리 마을을 직접 가보니, 당시 모습이 그나마 유지된 주택이 한 곳 남아 있었다. 방 2개, 부엌 1개, 우사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마을이 강변 모래 위에 조성된 탓에 주민들은 비만 오면 밤잠을 설쳤단다. 행여 물이 범람해 집이 물에 잠기지 않을까 걱정해서다.
1968년 봉촌교회 설립과 함께 주민 생활 환경도 조금씩 나아졌다. 당시 노상빈 장로를 중심으로 1969년 원동기를 구입, 자가발전으로 전 가구에 불을 밝혔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1970년엔 고대하던 전기도 본격적으로 공급됐다.
노상빈 장로는 개인 재산을 정리하고 빚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을을 위해 헌신했다. 이같은 공로로 이 마을에는 그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불과 10년 전인 2016년 전후로 경로당이 신축되면서 하수도 공사와 정화조도 함께 설치됐다. 물론 기존에도 일부 가구에 정화조가 시범적으로 먼저 설치됐다. 하지만 전체적인 정비는 이 시기에 이뤄질 만큼 시간이 걸렸다. 석면 제거와 지붕 개조 사업과도 연계돼 진행됐다. 마을 전체의 주거 환경이 눈에 띄게 좋아진 시기였다.
8개 골목도 각각 이름이 붙여졌다. 벽면에는 아이를 업은 여인, 수레를 끄는 사람, 짐 꾸러미를 이고 진 사람 등 당시 피란민들의 일상이 그려져 있다.
2호 입주자인 우난조(여·87)씨는 "처음 정착했을 땐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힘겹게 참고 견디며 살다보니 마을 전체적으로 제법 여유가 많아졌다"며 "이제는 주변에서 말이라도 '부자 마을'로 불리니 여한이 없다"고 했다.
1950년대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마을 정착 당시 모습. <하빈 PMZ 평화예술센터 제공>
1950년대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마을 정착 당시 모습. <하빈 PMZ 평화예술센터 제공>
◆연근과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마을
봉촌리 마을은 체험과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을 중심엔 2019년 개관한 '하빈 PMZ 평화예술센터'가 있다. 2015년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인 도시활력증진지역개발사업의 일환인 'PMZ평화기념마을 조성사업'으로 건립된 복합문화거점 공간이다.
센터 건립과 함께 마을 진입로를 비롯해 골목길·담장·조명 등 마을 전반에 대한 환경 정비가 동시에 이뤄졌다. 관광객도 제법 늘었다. 그냥 구경하는 관광지보다 체험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된다. 지역 특산물인 '연근'을 활용한 요리 체험과 공예 프로그램이 중심을 이룬다. 월 평균 방문객 수는 250명. 대부분 단체 체험객이다.
특히 마을 주민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함께 호흡하고 있다. '전쟁 피난 시절 주먹밥 체험'은 마을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주먹밥을 메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전재민촌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마을 해설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을 이야기 수집과 교육 과정을 거쳐 현재 5명의 마을 해설사가 활동 중이다. 해설사들은 체험객을 대상으로 연 재배가 시작된 배경, 마을이 형성된 이유, 전쟁 시기 기억 등을 직접 들려준다.
센터는 관광객 유치보다 마을과의 공존을 지향한다. 평소엔 센터 중심으로 체험을 운영하고, 축제나 특별 프로그램이 있을 땐 주민들과 협력해 마을 전체로 확장하는 형식이다.
황민정 센터장은 "마을이 있어야 센터도 존재할 수 있다"며 "예술과 평화라는 키워드로 한 체험·전시·공연을 마을 스토리와 엮어 풀어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어 "관광지가 아닌 방식으로 지역을 살리는 또 하나의 도시재생 모델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마을이 정비를 통해 골목길 등의 벽에 피란민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김현목 기자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마을 골목이 과거와 달리 정갈하게 정비된 모습. 김현목 기자
하빈 PMZ 평화예술센터 전경. <하빈 PMZ 평화예술센터 제공>
김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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