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모주길은 가야산의 여신인 정견모주 이야기를 테마로 조성된 산책로다. 가야산 만물상으로 가는 등산로 일부를 산책길로 꾸민 것이라 한다.
빛나는 널 응원해, 토닥토닥 힘내요, 모두 잘 될거에요, 올해 더 행복하세요.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계단 난간에 다정한 문구들이 걸려 있다. 지난 시간들과 다가오는 새해 사이에서 따뜻하게 등을 쓸어내리는 듯이. 돌아보면 첩첩 산들이 아득하다. 거대한 푸른 세상이 정연한 명도로 펼쳐져 마침내는 희고 밝은 허공이다. 허공에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퍼진다. 훌쩍 앞선 그녀들은 푸르고 짙은 숲으로 향하고 있다.
정견모주길은 천신의 길, 오색꽃수레길 등으로 이어져 있다. 잘 정돈된 데크길이 가야산 계곡의 쭉쭉 뻗은 소나무 사이를 구름 탄 듯 좌우로 돌아들고 높고 낮게 오르내린다.
꽃으로 치장된 오색꽃수레길. 정견모주의 길과 천신의 길 사이에 오작교처럼 놓여 있다. 정견모주는 상아덤 꽃가마를 타고 천신을 만나러 갔다.
◆ 정견모주길
테마관 뒤편 숲속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정견모주의 길'이다. 정견모주는 가야산의 여신이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기품을 지녔던 정견모주는 상아덤에 살면서 붉은색 불로초를 한 손에 쥐고 호랑이를 거느리고 다녔으며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 밤낮없이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기도에 감복한 천신 '이비가지'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오고, 정견모주는 상아덤 꽃가마를 타고 올라가 가야산 정상에서 혼례를 올렸다. 오색구름 신혼 방에서 머지않아 두 아들이 태어났다. 첫째는 아버지 천신을 닮아 해와 같이 얼굴이 둥글고 빛난다 하여 '뇌질주일'이라 했다. 그가 대가야의 '이진아시왕'이다. 둘째는 어머니 산신을 닮아 얼굴이 하늘색같이 푸르다 하여 '뇌질청예'라 했다. 그는 금관가야의 '수로왕'이다. 정견모주의 길은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조성된 산책길로 천신의 길, 오색꽃수레길 등으로 이어져 있다.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을 먼저 들렀다면 산책로에서 만나는 모든 공간들이 조금 더 즐거울 수 있다.
계곡물소리가 들리고, 데크길이 시작된다. 흐르는 물은 보이지 않지만 약하게 준동하는 물빛은 보인다. 잘 정돈된 데크길은 지면에서 살짝 떠서 나무들을 요리조리 피해 쓱쓱 나아간다. 하늘로 쭉쭉 뻗은 소나무들 사이를 구름 탄 듯 부유하며 가야산 계곡을 따라 좌우로 돌아들고 높고 낮게 오르내린다. 정견모주 길은 가야산 만물상으로 가는 등산로 일부를 산책길로 꾸민 것이라 한다. 가야산 만물상으로 올라가는 중앙 능선의 끝 지점이 상아덤 봉우리다. '상아'는 여신을 뜻하고 '덤'은 바위를 의미한다. 즉 '상아덤'은 '여신이 사는 바위'로 신화 속 정견모주의 거처이고 그녀가 백성을 위해 치성을 드린 곳이다.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부르는 공식적인 이름은 '서장대'다. 사람들은 여신과 천신의 혼례를 상징해 '가마바위'라고도 부른다. 만물상 개방 소식을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년이다. 테마관을 짓고 산책로를 만든 것은 2017년 경, 그때의 첫 방문 역시 어제 같다. 이 숲에 멧돼지도 오고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곰도 온다고 한다. 지금 곰들은 모두 잠들었겠지.
꽃으로 치장된 데크길은 '오색꽃수레길'이다. 덩실한 구름 조형물 아래 안내문을 찬찬히 읽어본다. '하늘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상상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 있다. 알록달록한 꽃이 쏟아지는 꽃수레 길을 따라 숲속쉼터로 올라가는 신비로움은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한 계단 한 계단 걷노라면 어느새 하늘에 닿아있다.' '오색꽃수레길'은 '천신의 길'에 닿아 있지만 조금 더 정견모주 길을 따라 오른다. '천신폭포'에 닿는다. 떨어지는 물은 보이지 않지만 물소리는 들린다. 조금 더 오르면 '천지바위'다. '하늘의 기운이 곳곳에 가득한 가야산에 천명이 내려진 천지바위가 있다. 하늘에서 떨어진 빛은 천지바위에 개벽을 알렸고 나라가 열렸다.' 천지가 바위라 무엇이 천지바위인지 모르겠다. 그저 이끼에 덮이고 또 두툼한 솔가지에 덮인 그들이 참 따뜻해 보인다.
오르막 끝에 심원사 가는 오솔길이 있다. 고려삼은 중 한분인 이숭인의 시에 '심원 옛 절은 가야산 속에 있는데'라는 구절에 나온다. 고려 말에도 옛 절로 불렸으니 참으로 오래된 절이지만 당우는 모두 현대의 것이라 한다. 계곡 너머 작은 포크레인이 크릉크릉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멀리 탕 탕 하는 소리도 들린다. 불사 중인 듯하다. 상아덤 아래 심원사가 있고, 심원사 가장 높은 자리에 '정견각'이 있다니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천신의 길 가운데 숲속 쉼터가 새집처럼 높이 들어 올려 져 있다. 정견모주와 이비가지의 사랑의 안식처로 꾸며졌으며 이곳에서 종종 명상체험이 진행된다고 한다.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옥상은 상아덤 마당으로 정견모주 길의 기점이라 할 수 있다. 탁 트인 전망에 첩첩 산들이 아득하다.
◆ 바람 되어 걷는 하늘 땅, 천신의 길
오솔길 아래 '이비가 쉼터'에서부터 '바람 되어 걷는 하늘 땅, 천신의 길'이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이 산길에 천신들은 오색구름을 나무에 달아 두었다. 낮에는 볕을 비추어 빛이 나고, 저녁에는 반딧불이 구름 안에 숨어들어 빛을 발한다. 가야산 정상으로 통하는 세 가지의 길 중 하나인 이 길은 천신이 준비해 둔 아름다운 구름길이다.' 소나무 우듬지 사이로 하늘이 우물처럼, 호수처럼 열린다. '바람 되어 걷는 하늘 땅'이라 수식한 이의 눈길과 마음이 느껴진다. 새소리 요란하다. 줄기 높은 곳에서, 낮은 덤불 속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울고, 노래하고, 딱딱딱딱 나무를 쪼아댄다. 먼 탕탕 소리와 사방의 딱딱 소리가 천신의 등장을 알리는 북소리라며 슬쩍 웃는다.
잠시 야자매트 길이 이어지고, '숲속 쉼터'가 새집처럼 높이 들어 올려 져 있다. '새들과 나뭇잎이 춤추는 이곳 숲속 쉼터는 정견모주와 이비가지의 사랑의 안식처다.' 정견모주와 천신은 이곳에서 동물과 어우러져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엎어진 항아리 속에서 꽃들이 쏟아져 나오고 금빛 구름이 떠 있다. 고요하게 텅 비어 맑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종종 명상체험이 진행된다고 한다. 명상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고, 제대로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작게는 산에 드는 일과 비슷한 것 같고, 불혹에서 지천명과 이순을 거쳐 종심에 드는 일 같고, 마침내 해탈이나 열반에 다다르는 일 같아서 막막히 어렵다. 정견모주의 정견(正見)은 '바로 본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8가지 자세(팔정도)의 첫 번째 덕목으로 열반에 이르는 출발점이고 끝까지 의지해야 하는 나침반과 같은 것이라 한다. 그리고 '바로 본다'는 것은 '나'부터 바로 보라는 뜻이란다. 지금 드는 생각이란 게 엎어진 항아리를 세워주고 싶다는 생각뿐이니 명상이 될 리가 있나.
숲속쉼터는 다시 '오색꽃수레길'로 이어졌다가 정견모주길 초입으로 돌아온다. 정견모주 길은 걷는 일에 몰두하면 짧은 편이고 생각이 많아지면 한없이 긴 길이다. 테마관 옥상의 둥근 잔디밭이 내려다보인다. '상아덤마당'이다. 상아덤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천신의 길에 올랐다가 상아덤으로 내려온 셈이다. 동쪽으로 난 '가야숲길'은 가야산 야생화식물원과 이어진다. 무장애나눔길도 있다. 주변은 곧게 뻗어 자란 낙엽송이 숲을 이루고 그 아래에는 벌개미취가 무리지어 산다. 늦여름이면 푸른 솔 아래 연보랏빛 꽃이 융단을 이룰 테지. 지금 갈 빛의 땅은 모든 피로를 내려놓은 휴식처럼 지극히 평온하다. 그래서 엎어진 항아리를 누운 항아리라 생각하기로 한다. 꽃을 쏟아내려고, 속 가득 가진 꽃을 보여주려고.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가야숲길은 가야산 야생화식물원과 이어진다. 주변은 곧게 뻗어 자란 낙엽송이 숲을 이루고 그 아래에는 벌개미취가 무리지어 산다.
>>여행정보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해인사IC로 나가 해인사 방향으로 간다. 가야면사무소 지나 야천삼거리에서 우회전해 59번국도 성주 방면으로 가다 가야산 역사신화공원으로 가면 된다. 테마관 옆 계단으로 오르면 정견모주길 들머리가 보인다. 주차비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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