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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예술가의 ‘숨’

2025-12-31 06:00
서영옥 계명시민대학 강사, 미술학 박사

서영옥 계명시민대학 강사, 미술학 박사

글 한 편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핵심을 짚어낸 기사가 한눈에 쏙 들어왔다. 영남일보 임훈 기자의 'talk&talk'을 보고 부산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말 대신 보여줘라!" 고(故) 유병수 계명대 미술대학 교수님이 수업 중에 종종 하신 말씀이다. 이런 순간을 두고 한 말이지 싶다. 작품 앞에 서자 숨이 멎는 듯했다. 기자가 '가창의 은둔자'라고 한 김길후 작가가 쏟아낸 것, 그것은 '숨'이었다. 들숨과 날숨 사이 그 어느 지점에서 토해진 '숨'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말을 못 찾았다.


작가는 그 '숨'을 내쉬기 위해 선택적 은둔에 들어갔다. 스스로 고립된 것이다. 매 순간이 투쟁의 시간이었으리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무채색 톤의 크고 작은 작품들 '무량대수'가 품고 있던 아우라다.


영상 속에서 작가는 가파른 비탈길로 무거운 짐을 끌어 올렸다. 힘에 겨워 악을 쓰다가 부들부들 떨며 앞으로 한 발씩 내딛는 한 인간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비록 퍼포먼스였지만 그것은 작가 개인의 서사를 넘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었다. 무엇이 이 작가를 이토록 처절하게 작업으로 밀어붙였을까.


작품 한 점 한 점이 심연 저 깊은 곳에 웅크린 집단적 자아처럼 느껴졌다. 농밀한 '숨'이 깃든 그것은 감상의 대상이라기보다 수행의 결과물에 가깝다. 쉽게 소비되지 않으며 관람자에게는 일정한 태도를 요구했다. 멈추고, 숨 쉬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김길후 작가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메시지를 챙기게 된다. 태도에 관한 것이다. 전시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완성되지만 창작만큼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 고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관람객 수, 매스컴의 조명, 이름의 확산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시간이 있다. 철저한 자기 검증의 시간이다. 김길후 작가는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포스트 휴먼 시대다. AI 시대에 예술가는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가. 창작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 아님을 시사한다. 비슷한 결과물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일수록 예술의 정체성은 요원해진다. AI가 아무리 정교하고 치밀해도 예술의 시작점은 여전히 숨, 인간의 그 미세한 떨림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부산 영도 스페이스 원지가 품고 있던 예술의 여운이 깊다.


예술은 늘 사람을 사람에게 데려다 놓는다. 궁금했던 작가를 소개해준 기사의 힘이다. 두 달 동안 독자들과 함께 걸었던 문화산책 길이 행복했다. 모두의 평안을 빌며, 2026년에는 또 다른 길에서 다양한 예술가의 숨을 함께 마주하길 바란다.


서영옥 <서영옥 계명시민대학 강사,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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