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단촌면 구계리 어르신들의 구술로 인생시집 출간
김수상·사윤수 시인, 기억의 ‘빼다지’를 풀어 담아내
문학을 통한 치유와 회복의 시간…주민들 잔잔한 감동
김수상·사윤수 두 시인이 최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경로당에서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어르신들의 생애를 구술로 받아 적어 엮은 인생 시집 '소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의 출판을 기념하는 행사를 주민과 함께 열고 있다.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구계2리 경로당. 최근 이곳에선 아주 특별한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김수상(60)·사윤수(62) 두 시인이 구계리와 인근 용봉리(의성군 신평면) 어르신의 생애를 구술로 받아 적어 엮은 인생 시집 '소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 3월 발생한 대형 산불은 마을 곳곳을 삼키고 상흔을 남겼다. 특히 구계리는 대부분 집들이 타버렸다. 용봉리는 다행히 대부분의 주택이 무사했지만 산과 작물 피해가 컸다. 시집은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을 어르신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해 기획됐다.
김 시인은 "산불로 한 마을이 다 타버린 분들의 심정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문학이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구술 시집이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두 시인은 산불 피해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산불 이야기를 듣는 김에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의성군립도서관에 '치유하는 문학프로그램'을 제안했고, 의성군으로부터 시집 출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들은 무더위와 폭우가 번갈아 오가던 지난 7월부터 눈이 시린 코발트빛 하늘이 펼쳐지는 10월까지 어르신들을 만나러 다녔다.
'마을은 아수라장에 시커먼 잿더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산도 검고 집도 검고 전기도 수도도 다 끊겼더군요/ 열네 집이 다 타고 안 탄 집은 여덟 채였습니다/ 말이 산불이지 전쟁 피난민보다 더 서글펐습니다/ 내가 말이 짧아서 불난 거 말로 다 표현 못 합니다/ 말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비참했습니다/ 동네 산과 집들이 다 타서 시꺼먼 초상집이 되었고 우리 집도 흔적 없이 사라졌어요/ 이 나이에 뭘 바라겠어요/ 내가 지금 꽃밭을 매듯이 자식들한테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더 아프지 말고 순탄하게 살다 갔으면 해요/ 그게 내 소원이에요' <소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중에서>
김 시인은 "시는 사람이 쓰지만, 인생이 불러주는 것을 받아쓸 뿐"이라며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대로 받아썼다고 했다. 글을 모르는 어르신도 있어 구술 작업으로 진행했다. 어르신들의 몸은 모두가 '기억의 서랍'으로 이루어져 있는 듯했다. 이곳 의성 사투리로 '빼다지'인 셈이다. 그 기억의 빼다지 안에 담긴 사연들을 두 시인에게 들려주었다. 처음엔 서먹해서 망설였던 이야기도 얼굴을 자주 보며 친하게 되니 묻어 두었던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한 어르신은 "시간이 허락한다면 '숨어 있던(숨겨 놓았던) 이야기'를 더 발굴해 낼 수 있을 텐데, 이쯤에서 인생시를 마무리하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두 시인은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구술이 끝나는 날 'ㄱ'자로 구부러진 몸으로 유모차에 의지해 산 너머 밭으로 작물을 돌보러 가는 어르신을 보며 인생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모습이 바로 시라고 느꼈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의성 청소년문화의집에서 예정돼 있는 낭독회를 위해 또 다른 준비를 했다. 잿빛 상처가 깊게 남은 마을이지만, 낭독할 인생시와 노래 '찔레꽃'을 높지 않은 목소리로 연습하면서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의성군 상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윤수 시인은 "마을의 상처가 아직 덜 아물었는데도 마을 어르신들이 다행히 문을 활짝 열어 주어 석 달이 넘도록 구술작업을 보람 있게 할 수 있었다"며 "때로 눈물도 흘리고 함께 웃기도 하며, 감자를 삶고 옛노래도 함께 부르며 어르신들의 일생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다"고 오히려 감사의 말을 전했다.
조경희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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