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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피란민촌의 흔적, 그때 그 사람들] “정부 따라 이동하며 삶의 터전 손수 일군 피란민들”…도시형성 출발점

2026-01-07 17:40

피란수도 부산에 형성된 피란민촌

고지대 특성상 정비 어려워 흔적 '고스란히'

지자체 피란민촌 도시재생 움직임 주목

"전쟁 견뎌낸 삶 도시 역사로 인정하는 과정"

전문가들은 6·25전쟁 시기 전황과 정부 이동 속에서 생겨난 '피란민촌'이 도시 형성 과정의 출발점으로 본다. 피란민촌이 전쟁과 이주의 역사가 교차하는 상징적 공간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동체 문화의 산실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지형 특성따라 다른 피란민촌의 흔적"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 본인 제공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 본인 제공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전쟁이 나자 서울·경기·강원 등지에서 온 피란민들이 대구와 부산으로 몰렸다"며 "특히 대구는 1950년 7월16일부터 33일간 임시수도로 기능하면서 비교적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져 피란민들이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김 소장은 "이후 낙동강 방어선이 북한군에 돌파될 위기에 놓이면서 대구도 위협받자, 정부는 그해 8월18일 부산 천도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이동했지만, 북쪽에서 내려와 돌아갈 곳이 없었던 일부 피란민들은 대구에 그대로 눌러 앉았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은 1·4후퇴 이후 유엔군 수송선을 통해 대규모 피란민들이 추가 유입되면서 '최종 정착지'성격이 더 뚜렷해졌다"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도시의 지형 특성에 따라 피란민촌 흔적이 서로 달랐다고 했다. 그는 "지형 특성상 산이 많고 고지대에 형성된 부산의 피란민촌 상당수는 도시 정비로 감당하기 어려워 오랜 기간 방치됐다"며 "그 결과, 도시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레 흔적이 옅어진 대구 등에 비해, 부산엔 전쟁기 삶의 모습이 비교적 온전히 남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피란민촌 도시재생 움직임 주목"


이재용 계명대 교수(도시계획학과). 본인 제공

이재용 계명대 교수(도시계획학과). 본인 제공

이재용 계명대 교수(도시계획학과)는 "피란민촌을 도시 형성의 출발점 중 하나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피란민들은 하천 옆, 산자락, 기차역 주변에 생존을 위해 스스로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 그렇게 형성된 피란민촌은 도로와 주거지가 뒤엉킨 채 확장됐고, 이후 행정이 뒤늦게 개입해 개발이 이뤄지면서 오늘날 도시의 모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피란민촌이 예전엔 낙후된 주거지나 철거 대상으로 인식됐는데 최근엔 이 역사를 알리고 보존하려는 지자체들의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북구 복현동, 서구의 기억공간, 달성군 평화기념마을 등 피란민촌 도시재생사업은 전쟁과 가난을 견뎌낸 이들의 삶을 도시의 역사로 인정하는 과정"이라며 "이 같은 기억의 축적은 도시의 정체성을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공동체 연속성을 회복하는 데도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모든 피란민촌을 동일방식으로 보존 또는 개발하려는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그는 "중요한 건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주민 삶을 기준으로 어떤 개입이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선 공공이 최소한의 주거 안전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론 주민과 함께 방향을 정하는 단계적 접근이 적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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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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