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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숫자 좌표였던 남극 봉우리, ‘청해봉’이 됐다…이름을 붙인 이는 달성군 공무원

2026-01-11 10:47

국토지리정보원 주관 대국민 공모전서 대상…1천163건 제안 중 선정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착안한 이름, 남극 무명 지형에 우리말을 새겨

숫자 좌표로만 불리던 남극의 한 지형에 우리말 이름이 붙었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이 주관한 대국민 공모전(지난 5일 시상)에서 '청해봉(靑海峰)'이 대상작으로 선정되면서다. 장보고 과학기지와 주변 지형에 우리말 지명을 부여하고자 마련된 '남극 고유지명 공모전'에는 모두 1천163건의 제안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대상작으로 뽑힌 '청해봉'을 제안한 이는 대구 달성군 유가읍행정복지센터 청소팀에서 근무하는 여옥(45·무보직 6급) 주무관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여옥 대구 달성군 유가읍행정복지센터 주무관이 남극 고유지명 공모전 대상작 청해봉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여옥 대구 달성군 유가읍행정복지센터 주무관이 남극 고유지명 공모전 대상작 '청해봉'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공모전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불리는 순간 의미를 갖는다는 구절이다. 숫자 좌표로만 존재하던 남극의 봉우리 역시 더 이상 차가운 지형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를 가진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남극은 늘 과학적 연구 대상이거나 지도 속 점으로만 인식돼 왔다. 하지만 이름이 붙는 순간, 그곳은 누군가의 언어와 기억이 닿는 장소가 된다. 단순히 지도 위의 표기를 넘어, 남극의 봉우리가 국민 모두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모전에 참여했다.


평소에도 지명은 그 땅의 첫인상이자, 그곳을 일구고 지켜온 사람들의 정신이 담긴 그릇이라고 생각해 왔다. 머나먼 극지의 땅에도 우리말 이름을 입힐 수 있다면, 남극 역시 우리에게 조금 더 가까운 공간이 될 수 있다."


▶'청해봉'이란 명칭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를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1천200년 전 장보고 대사가 세운 청해진이 겹쳐졌다. 청해진은 단순한 군사 기지가 아니라, 바다를 개척하고 국제 교류의 질서를 세웠던 상징적인 공간이다.


미지의 바다를 향해 나아갔던 장보고의 도전은, 오늘날 극지로 향하는 과학 탐사와도 닮아 있다고 느꼈다. 시공간은 다르지만, 미지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정신은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그런 생각 끝에 남극의 차가운 봉우리를 우리 역사와 연결하는 이름으로 '청해봉'이 떠올랐다."


▶대상 수상 소식 들었을 때 기분은.


"처음에는 기쁨보다 얼떨떨함이 앞섰다. 수많은 제안 가운데 선정됐다는 사실보다, 내가 지은 이름이 남극의 공식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개인의 생각이 국가의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이 쉽게 실감 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공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큰 위안을 받았다. 공직자로서는 지방직 공무원의 작은 발상도 국가적 가치와 맞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올해 1월부터 유가읍행정복지센터 청소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맑고 깨끗한 바다'라는 뜻의 청해봉이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름에 담긴 의미대로 살아가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지형의 특성과 이름의 의미를 어떻게 맞추려 했나.


"이름을 지을 때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이 산이 기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였다. 청해봉은 장보고 과학기지를 한눈에 굽어보는 요새 같은 지형이다. 거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기지를 지켜보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청해'는 맑고 깨끗한 바다를 뜻한다. 남극조약이 지향하는 평화적 이용과 환경 보호라는 가치, 그리고 극한의 환경 속에서 연구에 매진하는 탐사대원들의 정신을 함께 담고 싶었다. 지형적으로는 기지를 조망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의미적으로는 대한민국 극지 연구의 방향을 보여주는 이름이 되길 바랐다."


여옥 대구 달성군 유가읍행정복지센터 주무관이 남극 고유지명 공모전 대상작 청해봉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여옥 대구 달성군 유가읍행정복지센터 주무관이 남극 고유지명 공모전 대상작 '청해봉'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었나.


"남극은 어느 한 나라의 소유가 아닌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과거 청해진이 동아시아 해상의 국제 교류 거점이었던 것처럼, 청해봉도 국경을 넘어 연구자들이 협력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길 바랐다.


대한민국이 극지 연구의 주역으로서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명이라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남기고 싶었다."


▶공무원으로서 행정 현장에서 일해 온 경험이 이번 명명 과정에 영향을 준 부분도 있었나.


"공무원으로서 늘 공공의 가치를 고민해 왔다. 지명 역시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누구나 부르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공익적 언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정 현장에서 주민들과 소통하며 얻은 감각, 즉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 습관이 청해봉이라는 직관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이름을 만드는 데 밑바탕이 됐다."


▶달성군 공무원으로서 이번 수상이 지역에도 의미가 있나.


"이번 수상이 개인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달성군 공직자들의 가능성과 창의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통해 해상 질서를 세웠던 것처럼, 청해봉도 대한민국 극지 연구의 든든한 상징이 되길 기대한다. 유가읍에서 청소 업무를 맡고 있는 만큼, '청해'라는 이름에 담긴 뜻처럼 지역을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공간으로 가꾸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


▶주무관이 생각하는 좋은 지명은.


"2019년 도서관주간 공식 표어였던 '도서관, 어제를 담고 오늘을 보고 내일을 짓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좋은 지명 역시 과거의 역사를 담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며, 미래가 나아갈 방향을 안내하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불리는 순간 그 땅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에 자긍심을 심어주는 지명이 좋은 지명이다. 청해봉이 그런 이정표로 남기를 바란다."


▶청해봉이 향후 국제적으로 통용될 가능성도 있는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이번에 실감했다. 청해봉이 국제 지명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단순히 지도 한 점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적 영토가 확장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머나먼 남극에서 우리말 지명이 불릴 때마다, 한국의 극지 연구와 과학 역량도 함께 기억되길 바란다. 훗날 후손들이 세계 지도를 펼쳤을 때 남극 한복판에서 우리말 이름을 발견하고 자부심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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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사실 위에 진심을 더합니다. 깊이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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