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여자경찰서 터는 근대 치안 역사 상징 중 하나
올해 초부터 안내 표지판 사라져...‘어디있나’ 보니
3일 오후 대구 중부경찰서 신청사 공사 현장.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곳에 '대구여자경찰서 터 안내 표지판'이 설치돼 있었으나 사라져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대구 근대 치안 역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유관순 열사의 도피를 도왔던 사촌 올케 노마리아 경감의 흔적도 함께 자취를 감춘 것일까.
대구 근대 치안 역사의 상징 '대구여자경찰서' 터를 알리는 안내 표지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대구여자경찰서는 유관순 열사의 사촌 올케 노마리아 경감도 제2대 서장을 역임한 곳이다.
전국의 건축물을 여행지 삼아 오래된 이야기를 발굴하며 『서울 건축 여행』, 『대전 건축 여행』을 쓴 김예슬 작가는 "지난해 내내 대구를 방문할 때마다 표지판이 잘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지난달 23일 가보니 사라져 있었다"고 했다.
한 작가의 예리한 시선에서 시작된 '대구여자경찰서 터 표지판 실종 사건(?)'의 전말과 함께 대구여자경찰서에 대해 알아봤다.
2020년 설치된 대구여자경찰서 터 안내 표지판. 대구 중부경찰서 제공
대구여자경찰서는 1947년 5월 대구중부경찰서 신청사 공사현장 인근 부지에 설치된 이후 1957년까지 운영됐다. 여자경찰제도는 1946년 미군정 시기,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문적인 보호와 인권 존중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1947년 2월 서울여자경찰서가 최초로 개서한 이후 같은 해 5~8월 대구를 비롯 부산, 인천 등 주요 도시에 여성 경찰관들로만 구성된 독립적인 여자경찰서가 잇따라 문을 열었다. 당시 대구여자경찰서는 경북 전역을 관할하는 제5관구 경찰청 소속으로 여경 70명에서 많게는 120명까지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자경찰제도는 가히 획기적이었다. 성매매 단속, 청소년 지도 및 보호, 여성 관련 범죄정보 수집 등을 맡으면서다. 운영 원칙도 돋보인다. 당시 규정상 남성 경찰관의 여성 신체 수색을 금했으며 여성 피의자는 반드시 여자경찰서에 수용하고 모든 여성 관련 사건 조사에는 여자경찰을 참여토록 했다. 남성 중심의 강압적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려 했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자경찰서는 1950년대 들어 급격한 인구 팽창과 도시화로 인해 일반경찰서와의 업무 경계가 모호해졌고, 치안 효율성 제고를 위해 1957년 일반경찰 조직으로 통합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대구여자경찰서는 특히 유관순 열사의 사촌 올케인 노마리아 경감이 제2대 서장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지며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일본 경찰의 위협에도 유관순의 행적을 숨겨주고 도피를 도왔다고 전해진다. 김구 선생의 권유로 1947년 경찰에 입문(경위)했고, 1949년 6월 제2대 대구여자경찰서장을 맡아 1953년 9월 퇴임하기까지 여성 피해자 보호 등에 힘썼다.
대구여자경찰서 터 안내 표지판은 2020년 10월21일 제75주년 경찰의 날을 기념해 중부경찰서 뒤편 주차장 인근에 설치됐다. 제2대 서장을 지낸 노마리아(1897~1982년) 경감을 알리는 표지판도 함께 세워졌다.
3일 영남일보 취재 결과 표지판은 폐기되거나 분실된 것이 아닌 대구 중부경찰서 신청사 신축공사로 임시로 철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중부서 공사부지에 공사 차량이 출입하고 자재를 옮기고 쌓는 과정에서 표지판 파손 우려로 임시 철거해 따로 보관 중이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본래의 의미를 살려 다시 설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2020년 10월21일 대구여자경찰서 터 안내 표지판 제막식 모습. 대구 중부경찰서 제공.
3일 오후 대구 중부경찰서 뒤편에 설치됐던 '대구여자경찰서 터 안내 표지판'이 감쪽같이 사라져있는 모습.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한편 대구 중부경찰서 신청사는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 연면적 1만6천217㎡ 규모로 2027년 5월 완공 예정이다.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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