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채 경북연구원 사업지원본부장
우리는 오랫동안 경제성장이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소득 증가는 곧 행복의 증가로 이어졌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주거와 의료, 기본적인 안전이 확보되어야 편안한 내일을 계획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경제는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였고, 소득 증가는 삶의 만족도를 급격히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성장의 성격은 달라진다. 절대적 빈곤이 해소된 이후 사회는 비교와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더는 자신의 과거 삶을 현재와 비교하지 않게 된다. 타인과의 상대적 수준만으로 자신을 평가하게 된다. 소득이 늘어도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고, 불평등에 대한 인식도 커지면서, 기대 소득의 수준은 실제 소득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르게 커지게 된다. 결국, 소득에 대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득이 일정수준에 도달하면, 행복이 정체되는 U자형이나 역U자형 패턴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경제는 이미 이 두 번째 단계의 한복판에 서 있다.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선 지금, 추가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치솟는 주거비 부담, 불안정한 고용, 노후에 대한 불확실성은 소득 증가 효과를 빠르게 상쇄시키고 있다. 늘어나는 소득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의 피로도와 불안감은 확대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전환이 요구된다. 경제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더 이상 단순한 소득 증대가 아니라 '삶의 질'이다. 고소득 단계에 접어든 사회에서 행복을 좌우하는 요인이 비경제적 영역으로 바뀌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사회, 충분한 여가, 자아실현의 기회, 쾌적한 환경과 안정적인 공동체가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책과 사회적 논쟁이 성장률과 소득 규모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더 많이 벌기 위한 경쟁은 개인을 끊임없는 비교 속에 묶어두고, 사회 전체를 소모적인 구조로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삶의 질은 뒷전으로 밀리고 경제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보면 이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한 사회에서 개인의 평생소득은 시점별로 등락을 반복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제로섬에 가깝다. 조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소득은 숫자만 올라가고 그 속에는 누군가의 기쁨과 고통이 끊임없이 얽혀서 돌아가고 있고, 현재 세대의 과도한 성취는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비교에서 승자가 될 수는 없다.
결국, 우리 경제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얼마나 더 성장할 것인가 보다는 이미 달성한 소득 수준을 어떻게 삶의 질로 연결하느냐가 문제다. 생존을 위한 경쟁의 단계에서 신뢰와 여유 그리고 안정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나아가야만 경제는 다시 사람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성장의 속도보다 삶의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후방굴절 노동공급곡선(Backward-Bending Labor Supply Curve)에서 임금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효과가 대체효과를 앞서 노동시간이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소득 증가가 곧 삶의 만족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제의 한계를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