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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珍의 미니 에세이] 기분 좋은 날

2026-02-13 06:00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신년 모임에서 내가 '어린이 한복' 수혜자로 당첨됐다.


나는 워낙 횡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도 그 흔한 보물찾기 한 번 성공한 적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행운권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개업 행사에 가도 행운권은 아예 접수조차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떨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평생토록 그 흔한 복권도 한 번 사본 적이 없었다.


이번 모임에는 찬조 물품이 다양하긴 했다. 도서상품권도 있었고, 홍삼엑기스도 있었다. 스카프와 쿠션도 있었다. 현금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고 인기 상품은 단연 어린이 한복이었다. 한복집을 운영하고 있는 회장이 통 크게 찬조했기 때문이었다. 가격도 70만원대라고 하니 이런 횡재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가족 단톡방에다 당첨 사실을 알렸다. 자식들이 나보다 더 좋아했다. 그동안 외면했던 행운의 여신이 올해부터는 엄마한테도 미소 지으려나 보다고 덕담이 오갔다. 한복 대상으로는 여섯 살과 일곱 살 외손자들이 물망에 올랐다. 큰 애를 줘야 하느니 작은 애를 줘야 하느니 시끄럽던 중 아이 엄마가 끼어들었다. 아이들 한복은 설빔용으로 이미 구입했으니 엄마 한복이나 새로 한 벌 장만하라고 했다. 상품권이 아이 거라 어른은 안 된다고 했더니 추가 비용을 얹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 돈은 축하금으로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했다. 입이 귀에 걸렸다. 졸지에 한복 한 벌이 생기지 않았는가.


로또 당첨 일등한 사람은 그 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나는 그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가진 한복을 있는 대로 다 꺼내놓고 새 한복을 어떤 걸로 해야 할지 궁리에 잠겼다. 생각보다 한복이 많았다. 구색도 어지간히 갖춰져 있었다. 양털 두른 배자(褙子)에, 두루마기까지 있었다.


번개처럼 '당의唐衣'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당의를 입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예전 같으면 궁중에서나 사대부의 여인들이 입던 옷이 아니던가. 왕비도 아니고 정경부인도 아닌 여염집 아낙이 당의를 감히 입어도 되려는지? 딸한테 물었더니 숨넘어가게 웃는다.


"시대가 어느 땐데 엄마는! 경찰이 안 잡아가요. 이참에 우아한 당의 하나 장만하세요! 비용 걱정은 마시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곰곰 생각해봤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나는 잠시 이 땅의 질서를 의심했다. 펜데믹으로 인해 지구상에 미세한 변동이 일어난 걸까. 아니면 혹 지구 변방을 어슬렁거리던 게으른 신이 낮잠 자다 앗차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머릿속에 당의가 꿈결처럼 펄럭였다. 그걸 입고 딱히 어디 갈 데도 없지만 일순 두 발이 땅에 붙지 않았다. 적토마가 나를 향해 달려오려나? 기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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