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60211028115651

영남일보TV

  •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 대구시장 출마선언 “대구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겠다”
  • 유영하 국회의원 대구시장 출마선언 “대구의 내일을 여는 길, 함께 해주시길...”

[배진우의 스토리 인문학] <2> 나의 첫 이야기

2026-02-13 06:00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똥 표지. <길벗어린이 제공>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똥' 표지. <길벗어린이 제공>

내가 처음으로 읽었던 이야기는 '강아지똥'이었다. 강아지똥이 어떻게 민들레로 다시 피어나는지를 그리는 이야기.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교훈을 주는 동화. 지금은 잠시 절망하지만 더 큰 무언가로 미래에는 바뀔 수 있다는 희망적인 주제. 어린 나이에도 그 이야기가 와닿았나 보다. 좋은 글은 읽고 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이라는 작가의 말을 오래 생각한다. 권정생 작가님의 유언장 중 일부를 소개한다.


권정생 선생 유언장 중 일부.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 제공>

권정생 선생 유언장 중 일부.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 제공>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1일)"


생전 권정생 선생. 대구경북에서 활동한 아동문학가로 몽실언니 강아지똥 등을 썼다.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 제공>

생전 권정생 선생. 대구경북에서 활동한 아동문학가로 '몽실언니' '강아지똥' 등을 썼다.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 제공>

유언장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마지막 문단이다. 여러 번 쓰고 여러 번 외우고 혼자 어딘가에서 조용하게 속삭인다. 짧은 글에서 진심을 느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유언장의 형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용감하게 죽겠다는 작가님의 슬픈 욕심 때문이었을까? 환생에 대한 짧은 고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유언장을 처음 읽은 날부터 천천히 문장을 소리 내서 읽는다.


글에서는 진심이 없어도 솔직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솔직할 수는 있지만 진심이 없을 수도 있다고 믿기도 한다. 많이 솔직했고 많은 진심이 담겨 있다. 그분 유언장은 그랬다. 유언장을 읽다가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죽기 전까지 많은 이야기를 해야만 하겠다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비례도. 그림 속 인물이 비트루비우스이다. <아카데미아 미술관 소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비례도'. 그림 속 인물이 비트루비우스이다. <아카데미아 미술관 소장>

로마 시대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말했다. "계단은 홀수일수록 바람직합니다. 층계에 처음 내디딘 그 발이 끝에도 내디딜 수 있도록." 사람은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익숙하기에 익숙한 손을 쓰고 발을 쓴다. 세상 모든 계단이 홀수일 수는 없으나, 홀수로 된 계단을 걸으면 작은 감동과 작은 배려 같은 것이 느껴진다.


"신기하다. 17, 19 세면서 걷고 있었는데 여기 계단은 전부 홀수다."


"전에 어디서 들었는데, 유명한 건축가가 건물 계단은 홀수로 만들라고 했었어. 처음 내디딘 발로 끝에도 디딜 수 있도록."


누군가와 계단에서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계단을 세며 오르락내리락했던 것이 처음이 아닌데도 계단이 홀수라는 것도 계단을 홀수로 만들라는 그 말도 참으로 신기했다. 이후 계단을 걸으며 종종 숫자를 센다. 세상 모든 계단에는 비밀이 깃들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품고서. 하나, 둘, 셋. 이 계단이 홀수일지 짝수일지 층계 마지막까지 발을 내디딜 때까지 알 수 없다. 매일 나와 같은 계단을 오를 그 누구도 이것이 홀수로 끝이 나는지 짝수로 끝이 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몇 개의 층계로 인해 나와 계단만의 비밀이 생긴다.


계단에서 이야기를 쓴다.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계단의 수를 기억한다. 3층 우리 집까지 37계단, 본관 3178 강의실까지 165계단, 일했던 기숙사까지 24계단. 담담살롱까지는 2계단. 건물에 있던 계단이 꼭 홀수인 것은 아니었다. 층계에 처음 내디딘 발과는 무관하게 건물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경우 또한 허다했다. 계단의 수가 홀수이거나 짝수일 때 생각한다.


내가 옆에 있던 사람에게 계단이 홀수인 것을 처음으로 깨닫고 물었을 때, 그때에는 계단을 내려오는 중이었을까? 오르는 중이었을까? 옆에서 같이 계단을 걸었던 사람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을까? 아프지 않고서. 옆에서 나와 같이 걸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오래된 기억이 되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신이어도 좋고 누구였어도 좋을 것이다. 첫 번째 층계에 같은 보폭으로 발을 올려놓은 사람은 계단이 끝날 때까지 나와 같이 걸어주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니까. 슬프거나 딱딱하지만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방문한 건물의 계단 앞에서 계단의 수를 짐작한다. 건물이 품고 있는 이야기 대부분은 계단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과 나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당신도 당신의 첫 이야기를 품고 있을 테니까. 그럴듯한 글의 형식이 아니어도 좋다.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