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로 조카 둘 잃은 지 얼마 안 돼 여동생도 저세상 보낸 김정강씨
"왜 우리는 조용히 추모도 못 하나…인근 상인 추모제 반대집회 맘 아파"
대구지하철 참사로 조카 서은경·은정(사고 당시 24·22세)씨를 잃은 김정강 할머니가 지난 11일 대구 달서구 자택에서 스마트폰에 남아 있는 조카들과 찍은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조윤화 기자
2003년 2월18일 오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을 향해 달리던 열차 안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한 남성이 불을 지르면서 시작된 비극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당시 192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은 이 대참사로부터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유가족의 고통은 끝날 줄을 모른다. 정신적 후유증은 물론 비명에 간 가족과 친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등 복잡 미묘한 감정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참사 23주기(18일)를 일주일가량 앞둔 지난 11일 영남일보가 만난 유가족 김정강(여·80) 할머니. 그는 그해 벌어진 일들을 결코 잊지 못한다. 지하철 참사로 조카인 서은경(여·사고 당시 24세)·은정(여·22세)씨를 잃은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숨진 조카들의 엄마이자, 하나뿐인 혈육(친동생)인 여동생 김춘현씨마저 그해 유명을 달리한 것.
김 할머니는 참사 당시를 떠올리며 "퇴근 후 집에서 지하철에 불이 났다는 뉴스를 봤을 때만 해도 내 조카들이 그 안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는 "그 길로 사고현장을 갔더니 여동생이 지하철역 바닥을 구르며 '한 명만이라도 남겨 주지'라며 울부짖고 있었다"며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젠 눈물도 잘 나지 않는다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비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는 "지하철참사로 허망하게 딸 둘을 잃은 동생은 수행을 위해 경남 창녕의 한 사찰로 들어갔는데, 2003년 9월 태풍 '매미'로 사찰이 붕괴되면서 변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의 마지막은 직접 지켰다. 흙투성이가 된 몸을 내가 직접 씻겨 주며 '그렇게 보고 싶었던 두 딸을 하늘에선 꼭 만나라'며 작별인사를 했다"고 회상했다.
할머니는 매년 2월18일 열리는 지하철참사 추모식에 참석한다. 올해처럼 참사 추모기간이 설 명절과 겹칠 때면 더 가슴이 쓰라린다. 추모식에 가도 여동생과 조카들이 명절 가족모임에서 웃음 짓던 기억들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더 무거워져서다. 할머니는 "참사 후 명절 때만 되면 조카들과 여동생이 나온 사진을 붙들고 하도 울다 보니, 자식들이 사진을 몽땅 치워버렸다. 지금은 내 폰에 있는 사진 몇 장만 남아 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추모제엔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오는 18일 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열리는 추모식에도 꼭 참석하겠다"고 했다.
그간 추모 현장에서 겪은 씁쓸한 사연도 전했다. 최근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열린 추모식 때마다 유족과 인근 상인이 갈등을 겪어서다. 상인들은 팔공산 국립공원에 추모시설(위령시설)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유가족의 신경을 건드린다. 할머니는 "처음엔 상인들이 추모 반대집회를 하며 유족을 향해 밀가루와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요즘은 플래카드를 들고 노래를 크게 트는 정도지만…. 이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며 "그분들도 자식을 키우고 부모 형제가 있을 텐데, 추모제에서 그렇게 하는 건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이어 "서로 마음만 다치는 일들은 그만두고, 서로 화합하는 계기가 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참사 유가족이 진정 바라는 염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시민안전테마파크 내 희생자를 기리는 '수목장'의 공식 인정과 '시민안전테마파크' 명칭에 '2·18기념공원'을 병기해 달라는 것. 현재 시민안전테마파크엔 참사 희생자 32명의 유골이 안치된 추모묘역이 있다. 이 묘역 인근엔 희생자 192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가 세워져 있지만, 정작 묘역엔 별도 안내문이나 표지판이 없다. 이곳이 추모공간임을 한눈에 알아보긴 어려운 상태다. 인터뷰 말미에 할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질끈 깨문 채 말했다.
"원치 않게 죽은 것도 억울한데, 이름 석 자라도 갖고 가야 되는 것 아닌가. 정식 수목장으로 인정돼 조카들이 묻힌 자리에 이름이라도 적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속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명칭 병기는 꼭 필요하다."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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