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사지에서 장군묘까지…말이 이끈 설화와 역사의 길
아이와 함께 걷는 김유신 이야기, 덜 알려진 경주의 두 공간
경주 천관사지 팔각삼층석탑 옥개석 아래 받침부. 지붕돌 밑면을 연꽃 모양으로 조각한 점이 특징이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경주 교동 천관사지 팔각삼층석탑. 도당산 서쪽 기슭 들판에 자리한 절터로 현재는 복원된 석탑과 유구만 남아 있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경북 경주는 계절마다 얼굴이 다르다. 2월의 경주는 특히 그렇다. 관광객이 한풀 빠진 도시는 조용해지고, 유적은 제 색을 드러낸다. 겨울 끝자락의 경주에서 조용한 길을 찾는다면 교동 들판의 천관사지에서 시작해 충효동 수도산 자락의 김유신 장군묘로 이어지는 코스가 잘 어울린다.
천관사지는 월정교 인근에 있다. 차를 가져왔다면 월정교 공영주차장에 세우고 5분 남짓 걸으면 된다. 화려한 월정교를 벗어나 논길로 접어드는 순간 풍경은 빠르게 가라앉는다. 도당산 서쪽 기슭 논 한가운데 자리한 절터는 2월이면 색이 거의 빠진다. 논은 비어 있고 바람은 낮게 깔린다. 옛 절터의 흔적들이 더 또렷해 보이고 복원된 팔각 삼층석탑은 주변 풍경에 묻히지 않는다.
이 절터가 천관사지로 불리는 이유는 설화 때문이다. 고려 중기 문인 이인로의 파한집에는 젊은 김유신과 기생 천관의 이야기가 전한다. 화랑이던 김유신은 천관과 사랑에 빠졌고 어머니의 꾸중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술에 취한 어느 날 김유신의 말이 주인을 천관의 집 앞으로 데려간다. 의지는 접었지만 마음은 남아 있었음을 말이 먼저 드러낸 장면이다.
김유신은 그 순간을 단호하게 끊는다. 말의 목을 베고 천관을 외면한다. 천관은 끝내 목숨을 끊고 김유신은 뒤늦게 이 자리에 절을 세워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겨울 들판에 서 있으면 이 이야기는 과장 없이 다가온다.
석탑 아래를 유심히 보면 지붕돌 밑면 받침이 연꽃 모양이다. 연꽃은 불교에서 번뇌 속에서도 피어나는 깨달음을 상징한다. 잎 하나 없는 겨울 풍경 속에서 이 연꽃은 오히려 더 분명하다. 아이들에게는 설화로, 어른들에게는 인간 김유신의 얼굴로 읽히는 지점이다.
김유신 묘 둘레돌에 조각된 말 십이지신상. 말 형상이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경주 김유신 묘는 너른 석계단 위로 봉분이 자리 잡고 있다. 겨울 소나무 숲의 녹음과 대비되는 풍경이다. blowpaper@yeongnam.com
천관사지를 나와 충효동으로 향하면 들판은 숲으로 바뀐다. 차로는 10여 분 남짓. 경주 사람들에게 수도산으로도 불리는 이곳 자락에는 김유신 묘가 자리한다.
매표소 앞에는 잠시 머물다 가기 좋은 공간이 있다. 이맘때면 택시 기사들이나 연인들이 드라이브 삼아 들러 400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벤치에 앉아 겨울 대나무 숲의 얼굴을 읽곤 한다.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적막한 숲의 잎을 떨군 나무 사이로 봉분이 눈에 들어온다. 봉분은 지름 30m에 이르는 큰 규모다. 겨울 햇빛을 받은 흙빛은 단정하다. 봉분 아래 둘레돌에는 12지신상이 교대로 배치돼 있다. 몸은 사람, 머리는 동물, 손에는 무기. 통일신라 이후 왕릉급 무덤에서 보이는 형식이다. 말띠 해인 올해 이곳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말 형상의 지신 앞에 시선이 멈춘다.
천관사지에서 주인의 마음을 흔들었던 말은 이곳에서는 무덤을 지키는 수호자로 서 있다. 설화 속 말과 조각 속 말이 겨울 공기 속에서 이어진다. 흔들림에서 수호로, 개인의 이야기에서 국가의 역사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경주는 늘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를 덜 보는 선택이 더 오래 남는다. 설 연휴를 앞둔 주말, 말띠 해의 경주에서 김유신을 따라 천년의 시간을 걸어보는 것도 잘 어울리는 선택이다.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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