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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진단] 광주의 품격

2020-03-24

"대구도 우리 국민, 형제자매"

나눔과 연대의 '주먹밥 심성'

가장 먼저 대구에 병상 제공

광주 환대에 대구 환자 감동

대구시민 광주 情 잊지 않길

 

이창호1.jpg

다시 광주(光州)를 생각한다. 정확히 40년 전, 대한민국 군대에서다. 광주 출신 신병(新兵)들은 이른바 '관제(管制) 부모님 전 상서'를 써야 했다. 강요된 편지의 골자는 이랬다. '광주사태는 사주를 받은 폭도들이 먼저 총을 쏴 댄 폭동이기에 계엄군이 자위권을 발동해 발포한 것이다' 그 이등병들이 고향의 진실을 모를 리 없었다. 억장이 무너졌지만 속으로 피울음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 편지 쓰기는 군대에서 자신들을 향한 '따블백' 조롱만큼이나 싫었다. 그렇게 1980년 광주는 사람도, 도시도 소외되고 고립된 '섬'이었다. 그 해 5월 공수부대가 총칼과 군홧발로 광주를 도륙하는 사이, 광주로 이어지는 모든 길은 봉쇄됐다. 광주 밖 모든 신문·방송은 하나같이 '광주에서 시민 폭동'이라고 헤드라인을 올렸다. 그러나 광주시민은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눈물의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서로를 보듬었다. 그 주먹밥은 나눔과 연대, 이른바 '광주 정신'의 아이콘이 됐다.

 


작금 코로나19 재난 속에서 광주의 '주먹밥 심성(心性)'이 또 한번 진가를 발휘했다. 마치 둑이 터진 듯한 확진세로 대구가 '아노미'에 빠진 지난달 말. 병상이 부족해 애가 탈대로 타던 대구에 가장 먼저 병상을 내준 곳이 광주였다. 이 '병상 나눔'은 광주의 범사회적 합의에서 결정됐다. 광주시와 시민단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구 환자 수용'을 제안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의견 수렴. 어느 누구도 대놓고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결국 지난 삼일절 특별담화문까지 내어 '대구와의 병상연대'를 선언했다. 첫 제안이 있은 뒤 불과 사흘 만이었다. 이토록 흔쾌하고 신속한 결단이 있을 까. 이역(異域) 대구로 직접 구급차를 보내 환자를 데려 오는 수고가 따르는 데도 말이다. 재난 속에서 더 빛을 발하는 광주의 민·관 협력 프로세스가 놀랍고 부럽다. 광주라고 처지가 나은 건 아니었다. 대구보다도 먼저 첫 확진자가 나온 터 였다. 광주인들 병상이 왜 부족하지 않았을 까. 광주인들 추가 집단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왜 없었을 까. 그럼에도 추호의 망설임 없이 대구에 손을 내밀어 줬다. 광주발(發) 선한 영향력은 머뭇거리던 다른 시·도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대구 환자들은 광주에서 생각지도 못한 환대를 받았다. "대구 사람도 같은 백성이요, 형제자매 아니겄소. 광주가 당연히 품어 줘야제."(광주시민들) "힘들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이용섭 광주시장) 모두 진심이 절절이 묻어났다. 광주시민들은 건강을 되찾은 환자들이 떠날 때도 주먹밥을 쥐어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대구로 돌아 오던 길, 환자들은 그 주먹밥의 깊은 의미를 곱씹었을 것이다. 고난스러울수록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아닌 아량·포용을 바탕으로 한 연대와 나눔의 삶이 더 가치 있음을 깨달았으리라.


'전라도 하와이(변방·邊方)'라는 말이 있었다. 다분히 적대적이고 비하적이다. 과거 경상도 기반 정권들이 대놓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데 써먹었다. 전라도 중에서도 특히 광주를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지로 만든 대표적 조롱이다. 그런 상처를 안고 온 광주가 대구와의 병상나눔을 선언한 지난 삼일절 특별담화문은 자못 큰 울림을 줬다. '1980년 5월, 고립됐던 광주가 외롭지 않았던 것은 광주와 뜻을 함께 해 준 수많은 연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가 빚을 갚아야 할 때다.' 한편으론 송구하다. 외려 우리 대구가 마음의 빚이 있다. 40년 전 대구도 어느 곳 못지 않게 광주의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했기 때문이다. 대구가 이번 광주의 '주먹밥 온정'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이창호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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