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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맛길기행 .39] 麵이야기 (11) 대구의 유명 냉면집

2005-10-25

반죽일은 중노동…유명 냉면집 주방장 거의 외지인

[경상도 맛길기행 .39] 麵이야기 (11) 대구의 유명 냉면집
대동면옥 물냉면.

대동면옥(중구 계산동), 대동강(남구 봉덕동), 부산 안면옥(중구 공평동).

강산면옥과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냉면 전문점들이다. 특히 대동면옥과 부산 안면옥의 마스코트격인 온육수는 외지인들로부터 특별대접을 받는다. 북한에서 즐겼던 온육수는 왜 생겨났을까. 그 이유는 냉면이 겨울 음식이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찬 냉면과 뜨끈한 육수를 통해 음양의 조화를 노렸다. 그래서 냉면이 사철 음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골수 냉면파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말이 있다. 바로 '선주후면(先酒後麵)'이다. '술을 먼저 먹고 나중에 냉면으로 속을 푼다'는 의미다. 이때 냉면은 해장국이나 마찬가지다. 마치 바닷가 어부들이 식전에 먹던 속풀이 물회와 같은 구실을 한다.

냉면요리엔 잔 일손이 많이 간다. 밀가루로 칼국수를 뽑는 건 냉면 면발 빼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메밀 반죽은 뜨거운 물에 재빨리 반죽하지 않으면 메밀 입자끼리 잘 엉겨붙지 않아 면발이 잘 빼지질 않는다. 가능한 한 오래 반죽해야 쫄깃해지는데 요즘처럼 자동반죽기가 없던 그 시절 반죽일은 중노동이었다. 그래서 힘들면 달려갈 수 있는 집이 있는 제바닥 일꾼들은 몇달 못 견디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여건상 타지 출신이 더 오래 견뎠다. 그래서 그런지 대구지역 유명 냉면집 주방장들은 거의 호남 출신이다.

메밀은 가는 방법에 따라 질감이 달라진다. 재래식 맷돌을 사용할 경우 메밀 외피만 갈리고 속은 살려주기 때문에 반죽해도 면이 쫄깃해진다. 하지만 요즘처럼 고속 분쇄기를 사용할 경우 열도 많이 발생하고 속까지 으깨놓기 때문에 반죽해도 탄력이 별로 없다. 온육수는 주방장 취향마다 조리법이 조금씩 다르다. 예전 이북 사람들은 냉면 삶은 물에 국간장을 조금 가미해 온육수를 만들어 마셨다.


# 대동면옥·부산안면옥, 온육수 유명

중구 계산동1가 뒷골목, 퇴락했다지만 대동면옥이 반세기 이상 자릴 지켜 체면은 유지하고 있다. 70년대말까지만 해도 이 골목 남쪽 끝에 유명한 요정 일심관, 불고기 요리 1번지로 군림했던 계산동 땅집이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어 불야성을 이뤘다.

대동면옥과 부산 안면옥 사장은 한 집안 사람이다.

대동면옥 초대 사장 안차천(현재 구미에 거주)의 형 안목천은 6·25 때 부산시 중구 창선동으로 피란, 자기 성을 따 부산 안면옥을 오픈한다. 안씨 집안은 이미 구한말부터 평양에서 안면옥을 꾸려온 냉면 명가. 평양 안면옥은 제분소까지 소유할 정도로 큰 규모였다. 부산으로 내려온 안면옥이 요즘 맛 보기 힘든 '이북식 쟁반요리'를 내놓아 대박을 터트린다. 이 요리는 일종의 '북한식 소고기 전골'로 당시 남한엔 없었다. 고기를 다 먹고 나면 밥을 볶아 먹지 않고 냉면 사리를 넣어 먹는 게 이색적이다. 그런데 부산 안면옥이 어떤 연유로 대구로 오게 됐을까.

부산 안면옥 동절기 휴업…이듬해 4월쯤 재개

부산의 안씨는 식당이 정상궤도에 오르자 식당보다는 세상사에 더 관심 많은 '한량'으로 변모한다. 보다 못한 부인이 현재 대구 부산 안면옥 사장인 조카 방수영(75)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그때 방수영은 거창여고를 거쳐 진주고에서 영어교사로 있었다. 가업을 이어준다는 일념을 갖고 교직을 박차고 나와 부산 안면옥을 떠맡게 된다. 그가 대구로 올라와 부산 안면옥 대구지점을 대구국세청(현재 밀리오레) 동편 골목 안에 오픈한다. 날이 갈수록 부산보다 대구지점이 더 히트를 친다. 결국 부산 안면옥 본점이 대구지점에 통폐합되고 만다. 부산 안면옥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추어탕집인 상주식당처럼 동절기엔 영업을 하지 않고 이듬해 4월1일쯤 다시 문을 연다.

대동면옥과 부산 안면옥 냉면 온육수 맛은 조금 다르다. 대동면옥은 냉면 삶은 물과 고기 삶은 물을 섞는 반면, 부산 안면옥은 사골, 잡뼈 등을 약 24시간 삶은 물에 간장, 무, 생강, 파뿌리, 마늘 등 갖은 양념류를 넣어 빚는다. 대동면옥 온육수의 맛은 '분청사기', 부산 안면옥은 '조선백자' 같다.

대동면옥, 술꾼들 심야 해장파티집으로 애용

대동면옥은 50년대까지는 중구 동산파출소 앞 큰 길가에 있다가 60년대초 현재 자리로 이전한다. 그때 대동면옥 냉면은 특히 요정의 단골들에게 '해장면' 구실을 했다. 60년대초 구 오성고 근처에 자리잡았던 5관구 H 사령관은 지역의 유력 인사와 술독에 빠지길 좋아했다. 특히 금호호텔 북쪽 인교동 골목안에 자리잡았던 단골 요정 수향원(나중에 죽림헌으로 바뀜. 고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이 자주 이용)에서 술이 거나해지면 '심야의 해장냉면 파티'를 자주 만들었다. 동석자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대동면옥으로 직행, 느닷없이 유리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유리창이 깨지는 촌극도 연출했다.

"옛 모습이 좋아" 리모델링 못하게 막기도

대동면옥은 강산면옥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골목으로 이전한 뒤부터 엄청나게 성장한다. 현재 56평 ㅁ자 일본 적산 가옥은 여러번 개조해도 퇴락미가 돋보인다. 몇십년 단골 노인들은 추억의 음식인 냉면집은 너무 화려하고 거창하면 안된다면서 89년 4대 주인이 된 이옥자(50)에게 리모델링 못하게 압력을 가한다. 흥미로운 건 상당수 단골들은 주인 이옥자를 명맥을 잇는 손부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옥자는 결코 이북에서 내려오지 않은, 대구토박이다.

대동면옥이 늘 좋았던 건 아니다. 2대 백모 사장 시절에 위상이 추락했고 그걸 현재 서문시장에서 포목점을 하고 있는 이두영이 평북 운산에서 냉면집 주방장으로 있던 이창섭 할아버지로부터 기술을 전수해 3대 사장이 되며 현재 4대 사장 이옥자가 잃어버린 예전 대동의 명성을 되찾는다.

# 봉덕동 대동강, 실향민들의 '제맛'

남구 봉덕2동 대동강. 초대 주인 윤일순(77)은 평남 중화군 해안면 죽산리 출신이다. 그녀의 선친은 식당업에 간여하지 않았다. 22세 때 혈족 8명과 함께 1·4 후퇴, 서울을 거쳐 서구 내당동으로 피란온다. 그녀 집안은 내당동 서부교회에서 우유를 얻어먹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 가난이 그녀를 냉면집 주인으로 만든 것이다. 65년 당시 제과점에서 중국집으로 변해 있던 허름한 13평 한옥을 구입한 직후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북 음식을 팔았다. 비지, 빈대떡, 만두국을 끓여 팔다가 68년부터 평양식 냉면을 집중 판매한다.

윤일순은 고향에서 먹은 광천수 맛 같은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던 김치말이 냉면맛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도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조금 섞는다. 이북에선 꿩 육수와 동치미를 반반씩 섞었다고 한다.

이수성·이재용·윤덕홍·이동원씨등 자주 찾아

가업을 이은 외동딸 석정희(53)는 대동강 냉면 맛을 평가받기 위해 2002년 중국 베이징에 가서 시식회를 갖기도 했다. 윤일순은 북한 동치미에 대한 정보를 더 알려줬다. 북한에선 음력 9월에 김치를 담가 이듬해 음력 2~3월까지 먹기 때문에 큰 독을 땅에 6개월쯤 묻어둔다. 동절기에 꽝꽝 언 김치를 걷어내고 말갛게 고인 국물을 퍼낼 때 아녀자들의 맘이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

대동강 냉면 색은 메밀묵처럼 연한 데다가 육수까지 말갛기 그지 않다. 양념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신세대들에겐 맹물맛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이든 실향민들에겐 그게 '제 맛'이라고 한다.

'향수'를 부른 평양 출신 가수 이동원, 작곡가 김희갑·작사가 양인자 부부, 이수성 전 총리, 윤덕홍 전 대구대총장, 이재용 환경부장관 등이 자주 찾았다.

[경상도 맛길기행 .39] 麵이야기 (11) 대구의 유명 냉면집
대동강 물냉면.
[경상도 맛길기행 .39] 麵이야기 (11) 대구의 유명 냉면집
중구 계산동 대동면옥 전경.
[경상도 맛길기행 .39] 麵이야기 (11) 대구의 유명 냉면집
대동강 출입문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윤일순·석정희 모녀.
[경상도 맛길기행 .39] 麵이야기 (11) 대구의 유명 냉면집
개업 초기의 부산 안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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