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은 연기 넘나든 따뜻하고 열정적 배우
연기자 정애란(1927~2005·본명 예대임)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아마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출연했던 '전원일기'의 할머니 역할이라면 기억하는 이가 많을 지도 모르겠다. 그의 따뜻하고 자혜로운 연기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1927년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곱살 때 희광국민학교에 들어간 후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 개최되는 학예회 때마다 춤과 노래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연극부장을 맡아 교내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는 여학교 시절 부모 몰래 극장관람을 하는 것이 취미였다.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보수적이었던 그 시절, 배우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엄격한 한학자 집안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애란은 가족들의 극한 만류도 무릅쓰고 연기자가 되기 위해 큰 결심을 했다. 18세 때 유랑극단 유락좌를 따라 집을 떠나고 말았다. 45년에 극단 청춘극장으로 옮긴 후 '미륵왕자' '이차돈' '망향' '김삿갓' '바보온달' 등에 연이어 출연했다. 20여년의 무대 경력은 연기자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50년대 후반부터 스크린에 스카우트되어 김수용 감독의 '공처가'를 비롯해 '낙엽' '물레방아' '남행열차' '인생차압' 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35세가 되던 62년에 최은희 주연의 '29세 어머니'에서 최초로 노역을 맡았다. 당시 복혜숙, 석금성, 김진재, 고선애 등 많은 노역배우가 있었지만 이강원 감독은 정애란의 연기에 탄복해서 아직 이른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인 역할을 맡겼다. 그는 또한 악역도 잘 해내었다. 62년 조미령과 엄앵란이 주연한 '대장화홍련전'에서 표독한 계모 역을 맡아 소름돋는 연기를 보여줬다.
정애란은 생전에 "혁명투사처럼 강인하고, 개성이 뚜렷한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의 연기인생은 그러했다. 연기자로서 완숙했고, 사명감을 다했다. 그는 지난해 11월10일 노환으로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아들 박준성, 딸 예수정(연극배우), 사위 한진희(연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제1회 한국영화상 여우조연상, 대종상 특별상, 방송대상 공로상 등을 두루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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