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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지낸 긴 세월 동안 세 살 터울의 친언니와 장문의 손 편지를 주고받았다. 대부분이 자매간의 수다와 가족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었는데, 그 중 지금도 때때로 떠오르는 그릇이야기가 있다.
그릇1. 1996년 대학 졸업 전시를 끝낸 즈음에 의문문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편지가 자취방으로 날아들었다. “너는 어떤 그릇이니”라고 묻는 말에 이어, 그릇에는 네 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 그릇은 입구가 넓고 깊이가 깊은 그릇이라 하였고, 두 번째는 입구는 넓지만 깊이가 얕은 그릇, 세 번째는 입구는 좁지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그릇, 마지막 네 번째 그릇은 입구도 좁고 깊이도 얕아 그 무엇도 담을 수 없는 그릇이 있다며, 한 번 더 어떤 그릇이냐고 되물어왔다. 보낸 이는 까맣게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그 질문을 아직도 스스로 묻는다. ‘과연 나는 어떤 그릇일까?’
그릇2. 유학 2년차 시절,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는 본인의 일상과 가족의 안부를 전하면서 이렇게 물어왔다. “너의 그릇에 무엇인가 가득 채워놓고 있는 건 아니겠지?” 연필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편지를 읽으며,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슴이 먼저 알아버린 탓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울컥했다. 마음의 그릇에 무엇이든 채우기만 한다면, 정말 중요한 것을 담아야 할 때 담을 공간이 없어 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며 아주 조금씩이라도 비워두라고 했다.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그 세월 동안 그릇의 형태는 계속 변하고 있고, 그릇에 담긴 내용물도 변하고, 적정의 수위를 유지하다가 자칫 마음 다스리기를 게을리 할라치면 곧장 넘쳐버리고 만다.
하지만, 답이 늦게 온다고 해서 질문을 그만둘 이유는 없지 않은가. ‘깨어서 준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준비가 되어 있기만 하면 가르침은 언제든 온다.’
지난한 삶에, 빛나는 지표와도 같은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에게 거짓됨 없이, 고요하고 맑게 여물어 가기를 바란다.
정유지<섬유조형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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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스스로 묻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112/20111205.010230745260001i1.jpg)